드디어 울릉도에 가다
2025년 4월 말,
드디어 남편과 함께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울릉도'를 가게 되었다. 지난주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일기예보를 계속 확인했는데 날씨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며칠 째 ‘강풍주의보 발효’ 문자 메시지가 와서 출발하기도 전에 긴장모드로 대기했다. 전날 저녁에 잠시 외출했는데 바람이 꽤 싸늘해서 패딩과 겨울 잠바도 챙겼다.
우리의 여행은 밤부터 시작되는 아주 꽉 찬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22시에 미팅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포항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노을이 막 지기 시작한 이른 저녁에 미리 도착해 인근 식당에서 든든하게 삼계탕을 먹고 여객선터미널 앞에서 대기했다. 차 안에서 쪽잠도 자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저녁 7시가 되자 울릉도에서 출발한 크루즈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녁 9시쯤엔 터미널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고 우리도 티켓을 받아 일찍 승선했다. 하늘은 여전히 깜깜했고 얼굴로 느껴지는 바람이 조금 거셌지만 우리가 타고 갈 크루즈를 보니 목포에서 제주 가는 배보다 훨씬 커 보여서 '아무리 큰 파도도 걱정 없이 헤치고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되었다. 그리고 귀밑에 붙이는 키미테와 마시는 멀미약까지 복용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데다가 6시간 반을 항해하는 동안 침대칸에서 자고 갈 수 있어서 더 이상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 드디어 출발~
남편은 바로 옆의 남자 룸으로 들어가고 나도 한참을 뒤척이다 이제 막 깊은 잠에 빠지나 싶을 때, 새벽 5시부터 안내방송이 나왔다. '5시 반쯤에 일출을 볼 수 있으니 사진도 찍고 좋은 추억을 남기라'는 내용이었다. 눈꼽만 대충 떼고 패딩을 걸치고 남편과 함께 갑판으로 향했다. 첫날 날씨는 ‘흐림’으로 예보되어 있는 터라 낮은 회색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 아쉽게도 일출을 보지 못했지만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바람은 생각보다 포근했고 구름 뒤편으로 밝아지는 환한 기운이 오늘을 기분좋게 이끌어 줄거라 생각되었다. 어느 쪽에서 해가 뜨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왔다 갔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배는 어느새 울릉도에 거의 도착했다. 첫날부터 꽤나 힘든 체력싸움이 예상되었다.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갈매기 때의 깜짝 이벤트?에 웃음 한 컷을 날리며 드디어 입도!
다행히 맑은 햇살이 쨍하며 구름을 헤치고 나타났고 27명의 일행이 한 팀이 되어 버스를 타고 울릉도의 중심지인 '도동'으로 향했다. 바로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을 정도로 맑은 바닷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해안 길이었다.
도동의 첫 이미지는 4월 말이라 초록빛과 싱그러움이 가득한 소박한 섬이었고 여느 도시보다 일찍 깨어 분주했으며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로 활기찼다. 해설사 말씀처럼 ‘울릉도는 올라가면 산, 내려가면 바다’였다. 그래서 '길을 잃을 일이 없다'고 한다. 항구 앞에는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해일이 일어나거나 거대한 상어가 나타날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비탈길에 우뚝 서 있는 숙소에 짐을 먼저 내리고 아침 식사로 홍합 비빔밥을 먹었다. 점심에는 오삼불고기, 저녁에는 소가 약초를 먹어서 ‘약소’라고 불리는 소고기구이까지 동네 맛집에서 아주 귀한 식사를 즐겼다. 식당마다 처음 본 나물을 아낌없이 내주시고 된장국도 쑥과 엉겅퀴만으로 간을 하셨다는데 들깨 향이 나면서 짜지도 않고 정말 꿀맛이었다. 식사할 때마다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첫 코스로 '봉래폭포'로 향했다. 물이 귀한 섬에 무슨 폭포인가 했는데 성인봉부터 흐르는 물줄기가 산기슭을 따라 내려와 커다란 폭포가 '콸콸콸'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물 걱정도 없고, 물맛도 좋고, 여러 번 씻을수록 피부가 좋아진다’고 했다. 가는 곳마다 계곡도 많고 맑은 물이 계속 흐르는데 정말 여느 섬과 달라보였다. 최근에는 해양 심층수로 ‘울릉도 생수’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오후에는 연수원에서 '독도 특강'을 했다. 그동안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강의하셨는데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노래 가사도 몇 번 변경되었다'고 한다.
- 뱃길 따라 200리 → 87km / 외로운 섬 하나 → 91개의 섬
-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 평균기온 12도 강수량은 1300 → 평균기온 13도 강수량은 1800(지구 온난화)
-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 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해양 환경변화)
- 십칠만 평방미터→ 십구만 평방미터(독도 실 면적)
크루즈 안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잔대다가 점심을 바로 먹고 받는 교육이라 비몽사몽간이었지만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저녁이 되자 갑자기 까만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댔다. 이른 귀가를 하고 피로를 한꺼번에 씻겨줄 따스한 물에 샤워를 하고 그냥 자기가 아까워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했다. 연수원에서 나눠준 달달한 고로쇠 물을 먹기 위해 울릉도 오징어도 사고, 나물과 호박엿도 샀더니 벌써 짐이 한 가득이 되었다.
남편도 울릉도에 처음 왔지만 '물도 풍부하고 먹거리도 좋고 기가 맞는 것 같다'며 연신 감탄했다. 섬치고는 정말 살기 좋은 곳 같았다.
'역시 섬이구나' 싶을 정도로 밤새 지붕이 들썩거리며 바람이 거셌다. 이 정도라면 내일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새벽녘부터 이동하느라 눈에는 졸음이 가득하고 첫날부터 17,000보를 걸어서 힘든 하루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여전히 쌩쌩했다.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듯 다음 날도 햇볕 쨍쨍! 차분히 식사를 하고 어제 바람으로 인해 통행이 제한되었던 '관음도'로 향했다. '깍새(슴새)가 많아 피리소리가 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울릉도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고 갈매기의 서식지여서 바로 옆에 사람들이 지나다녀도 무심한 듯 알을 품는 갈매기와 도망가지 않고 그 옆을 지키는 짝 갈매기들이 불안하면서도 무척 다정하게 보였다.
섬을 구경한 후, 울릉도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태하'에 도착해 관광 모노레일을 타고 우리나라 10대 비경이라 하는 ‘대풍감’을 감상했다.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 아래 하얀 파도가 부서지며 파란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망망대해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내려올 때는 태하 옛길을 따라 걸었는데 해안가에 우뚝 솟은 테트라포드 위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갈매기 떼의 모습도 놓칠 수 없는 예쁜 풍경이었다.
오후에는 유일하게 울릉도에서 평지를 이루고 있는 '나리분지'로 향했다. 지리산 성삼재를 향해 오르는 가파른 길처럼 꼬불꼬불한 도로를 한참 동안 올라가니 주변이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인 평지 마을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온갖 약초를 얹은 채소 비빔밥과 울릉도 막걸리를 마시며 일행과 담소를 즐겼다.
2019년에 개통되었다는 섬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아 생각보다 빨리 숙소로 돌아왔는데 다양한 섬과 사연 있는 바위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찌 보면 오늘이 마지막 밤이기도 해서 별이라도 찾아볼 겸 해안으로 나갔다. 밤 10시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했던 주변이 금새 고요해졌다.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울릉도의 반짝이는 밤 풍경을 마음에 한 번 더 담았다.
마지막 날!
새벽 6시에 모여 이른 아침밥을 먹었다. 꼭두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선창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쾌청했으나 눈앞에 파도가 보일만큼 바람이 거세었다.
몇 년 전, 큰애가 복무하고 있는 백령도에 가면서 멀미 때문에 죽을 뻔한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키미테도 미리 붙이고 밥도 먹고 멀미약도 챙겨 먹었다. 다행히 독도행 쾌속선은 일정대로 출발 했지만 오늘 파고가 2.5m정도여서 그야말로 롤러코스트가 따로 없었다. 앞자리에는 할머니 일행이 단체로 앉으셨는데 배가 출발하자마자 바로 봉지에 얼굴을 묻고 도착할 때까지 고개를 못 드시는 분도 계셨다. 조금 연세가 있으신 직원께서 승객들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비니루를 드릴까요, 봉다리를 드릴까요, 봉지는 비싸니까 아껴 쓰시라, 멀미로 죽은 사람 절대 없다’는 등의 농담도 해 주시고 한 분 한 분 열심히 챙겨주시는 모습이 무척 친절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최대한 잠을 청하면서 멀미약의 효력을 제대로 느꼈다.
'독도에 입도를 못하면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하고 돌아간다'고 미리 안내 했는데 파도가 높아서 배 밖으로 나가서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발을 뻗으면 닿을 듯한 지척에서 바로 돌아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억울하겠다 싶었다. 그것도 우리 배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바로 독도를 눈앞에 두고도 내리지 못한다면 너무나 아쉽고 슬플 거 같아 ‘이 정도 파도면 배를 접안하기가 어렵겠다’라고 미리 포기하고 있었다.
다들 숨죽이고 조용히 있다가 선장님이 겨우겨우 접안에 성공하자 커다란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든 이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들 각자의 조상님께 감사드리며 드디어 ‘독도에 입도!’
약 20분 정도 머물렀는데 쾌속선은 계속 파도에 밀려 귀를 찢는 굉음을 내고 있었다. 떠나는 발걸음이 너무 아쉬워 마지막까지 남아 사진을 찍었다. 너무 감격스럽고 벅차고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파도가 더 험했다. 직원 말씀으로는 ‘원래 앞자리가 멀미를 더 한다’며 나중에 배 탈 때는 뒷자리에 타라고 알려주셨다. 배에서 내릴 때 우리 일행 중 여자분이 하신 말이 더 웃겼다. ‘내 인생에 배는 절대로 없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포항행 크루즈를 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일행들 모두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다. 아마 다음에 또 울릉도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울릉도 공항이 완공된 이후나 되지 않을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크루즈 안에 걸려 있는 커다란 울릉도 명소 사진들이 친근하게 보이면서 나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더듬을 수 있었다.
포항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380km로 너무나 멀었지만 오늘은 뭐든 긍정적으로 좋게 받아들여졌다.
‘우린 지금 행복하니까!’
P.S
- 독도 새우가 너~무 비싸서 결국 구경만 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었지만 간사하게도 독도에 다녀온 후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또한, 거의 한 달을 독감때문에 코도 막히고 귀가 안들려서 고생했는데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귀도 들리기 시작했고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 갈매기도 오지게 봤다. 커다란 울릉도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떠나왔는데도 갈매기가 계속 배웅을 해줘서 고마웠다. 갈매기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다.
- 포항으로 돌아오는 크루즈에서 조타실을 견학할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 해 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내부 구경하고 항해사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가끔 돌고래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전망이 짱이었다.
참고로, 울릉도에는 '3가지'가 없다고 한다.
- 1. 뱀(향나무가 많아서) 2. 공해 3. 도둑
- '울릉도'는 울렁울렁해서 울릉도가 아니라 '울창해서' 鬱(울창할 울)陵(언덕 릉)島(섬 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