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서와 은목서!
이름만 들으면 두 나무가 사이좋은 오누이 또는 형제. 자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꽃 모양도 비슷하고 꽃 피는 시기도 비슷하다. 향기가 너무 좋아서 세계적인 향수 샤넬 No.5에서도 재료로 쓰이는 꽃이라고 한다.
9월 말이 되면 어디에선가 달콤한 과일 향을 머금은 조그만 꽃송이들이 금빛 수를 놓은 듯 몽글몽글 피어있는 환한 금목서를 볼 수 있다. 금목서는 꽃을 찾기도 전에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보라는 듯 지나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익숙한 향기에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 근처에 화려하게 웃음지으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오렌지빛 금목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금목서는 색깔과 향이 진하고 멀리서도 향기를 느낄 수 있어 '만리향'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향기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진한 복숭아 향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내 경우에 금목서는 오래 전 해외여행 중 알게 되었다. 어느 나라였는지 생각이 잘 안나지만 주택가를 지나던 길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굉장히 상큼하고 달달한 향기가 계속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고급 향수처럼 진한 향이 너무 좋아 향기 나는 곳을 찾아보니 바로 옆에 따스한 햇살을 가득 품은 채 흐드러지게 핀 금빛 나무가 있었다. 일행에게 물어보니 주로 따뜻한 곳에서 자생하는 금목서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도 그 나무를 가끔 그리워했는데 우연히 우리 지역에서 다시 보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고 많이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전에는 그런 나무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이맘때가 되면 어느 곳에 숨죽여 피어있는지 일부러 찾아보게 되고 행복했던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익숙한 향기와 어여쁜 자태에 여지없이 나의 발걸음은 금목서에 붙잡히고 만다.
10월 중순이 되면 금목서의 바통을 이어 향긋하고 부드러운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나무가 있다.
하얀 순백색의 조그만 팝콘같은 꽃잎들이 올망졸망 모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잠깐씩이라도 멈추게 만드는 은색 꽃의 이름은 바로 은목서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정원에는 앞 뒤로 은목서가 빼곡히 둘러싸여 있다. 언제부터 피어 있었는지 바람에 스며드는 익숙한 향에 고개를 들면 수줍은 듯 살며시 고개 내밀고 있는 하얀 은목서가 찾아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금목서보다 향의 진하기는 덜하지만 가슴깊이 파고드는 은은함과 하얀 순수함이 더 청초하게 느껴진다.
특히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작은 사잇길이 있는데 울타리처럼 삐죽 고개 내밀고 있는 은목서의 향이 지나가는 이의 어깨위로 살포시 쏟아지면 그곳에 계속 머물러서 나를 어루만지는 살가운 바람과 함께 향긋한 은목서의 잔향에 잔뜩 취하고 싶어진다.
금목서는 멀리서도 그 향기를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은목서는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은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아파트에 내가 좋아하는 은목서가 있어 찬 바람 부는 날에도 일부러 옷깃 여미고 나가서 향기를 맡고 싶을 만큼 너무 좋은 요즘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오래 머무르고싶게 하는 목서들의 생명을 오래오래 붙들고 싶을 만큼 가슴 가득 향기를 담고 싶어진다.
하지만 금목서나 은목서를 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파란 하늘에 금빛, 은빛을 수놓은 목서들이 어느새 피었는가 싶으면 금새 무리지어 떨어지고마는 짧은 만남이 아쉬움을 더욱 길게 남기고 다음 해를 서둘러 기다리게 한다.
믿거나 말거나 중국에서는 목서를 ‘계수’라고 하는데
동요 ‘반달’ 가사에 나오는 계수나무가 바로 목서 종류라고 한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금목서인지 은목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푸른 하늘에 머무르고 있는 토끼 역시 서서히 스며드는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감미로운 꿈을 꾸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