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1월 27일 아침에 강원대 병원으로 조직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내내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검사 결과가 깨끗하네요"
"아마 염증 반응 때문에 PSA수치가 일시적으로 올라간 거 같아요"
"전립선 비대 증상이 약간 있네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이 정도의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상상을 하며 덤덤한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사진출처 : Pixabay]
나 : "어떤까요?" 약간 떨리는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의사 : "음~~~ 조직검사에서 안 좋은 게 발견되었네요"
의사 : "조직 12군데를 떼어내서 검사했는데 그중 2군데에서 악성종양이 나왔어요"
나 : "그럼 암이란 건가요? 내 목소리는 조그맣게 기어들어갔다.
나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수술을 해야 하나요?"
의사 : "그런데 크기가 아주 작아서 정밀검사를 해봐야 할거 같아요"
의사 : "MRI 검사를 통해 정확한 부위와 크기를 알아보고, 뼈스캔 검사를 통해 전이여부를 확인해봐야 해요"
의사 : "그런 다음에 수술여부 등 치료방법을 찾아보죠"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산정특례자 중증환자로 등록이 되었다. 나는 졸지에 암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허탈한 마음으로 진료실 밖으로 나와 담당 간호사와 MRI검사 및 뼈스캔검사 예약일을 잡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별일이 없을 줄 알고 필리핀에 돌아가는 항공티켓도 미리 끊어놓았는데 취소를 해야 하나? 언제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니 일정 변경을 할 수도 없고, 필리핀 운전면허도 갱신해야 하고 은퇴비자가 만기가 되어 비자연장도 해야 하는데... 일순간에 모든 스케줄이 꼬여 엉망이 되어버렸다.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몸의 모든 이상 반응들이 암과 연관되기 시작했다. 계속 허리 통증이 있었는데 허리뼈 쪽으로 전이된 거 아닌가? 복부와 옆구리가 아프면 이쪽에도 전이되었나?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다닌다. 그래도 다른 암에 비하면 초기에 수술을 하면 완치율이 높다니까 다행인가?
아무래도 수술을 받으면 그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모텔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중에서도 물건을 두고 가는 경우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시계, 안경, 옷, 모자, 액세서리, 어떤 때는 신분증이나 카드를 두고 가는 경우도 있다. 금반지나 목걸이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입던 팬티를 빨아서 걸어두고 그냥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물건들은 청소하다가 따로 거두어 보관해 두거나 카운터에 갖다 맡기는데 대개 나중에 다시 찾으러 오거나 택배로 보내달라고도 한다. 요즘에는 파워뱅크나 휴대폰 충전기를 많이 두고 가는데 충전기는 너무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다 보니 거의 찾아가질 않는다.
한 번은 청소를 마치고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사장님으로부터 급하게 찾는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장기 투숙하는 손님이 약봉지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없어졌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평소 먹는 약뿐만 아니라 선글라스, 보청기 등도 들어있는데 보청기는 200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젠장~ 이거 큰일 났군.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아내에게 확인해 보니 빈봉지만 잔뜩 들어있어서 쓰레기 봉지인 줄 알고 버렸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모텔 앞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가봤더니 이미 수거해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매일같이 플라스틱이나 병, 종이류 같은 재활용품을 수거해 가는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그분이 쓰레기봉투를 실어가서 다른 곳에 버리셨나 보다. 그래서 모텔 근처의 쓰레기 모아놓는 장소를 하나하나 찾아가 보니 마지막 큰 나무 밑에서 우리 쓰레기봉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봉투를 풀어헤치고 속을 뒤져보니 문제의 그 비닐봉지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아~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 이 봉지를 찾지 못했으면 보상문제로 시끄러웠을 텐데 정말 다행이다. 놀란 가슴을 한참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