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이젠 한국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되다
2023년 2월, 4년간의 아부다비 살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때였다.
아부다비에서 겪은 일들을 꼭 책으로 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할지는 묘연했다.
2024년 2월 말 복직을 앞두고 한겨례 '아이패드로 그림책 작가되기' 수업을 신청했다.
그림책 작가가 되면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아부다비책을 쓰는 것에 한발자국 가깝게 다가갈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림책 수업이 끝나고 아쉽게도 그림책 작가가 되지는 못했다.
라인드로잉으로 태권도 책을 내는 것이 목표였다.
열심히 그렸고 대부분 완성을 했지만 아직 출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해당 수업의 강사인 지 작가님을 알게되어 부산 아작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고,
마침 2024년 목표로 공저글쓰기를 진행하신다하여 더욱 반가웠다.
그렇게 2024년에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 한권 나오겠구나 하고 들떠 있었다.
2024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다.
13년만에 교단으로 돌아왔고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 6권 발간되었다.
2024년 9월 백 선생님이 교사에세이 공저를 같이 써보는게 어떠냐고 연락이 오셨다.
기뻤다.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 한권 더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2024년 9월 백 선생님이 이끄는 글쓰기모임에 가입했다.
아부다비 이야기를 개인저서로 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2024년 11월 교육청 자율기획영어강의공모에 선정되며 전자책을 먼저 출간하게 되었다.
내 강의의 수강자들에게 아부다비책 일부를 전자책으로 출간하여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수강자 선생님들은 내 책에 관심을 가지고 독자가 되어주셨으며 재미있다는 반응을 주셨다.
신이 난 나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께도
또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도 선물이랍시고 내 아부다비 전자책을 보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책을 읽겠다고 하신지 10여분만에 전화가 오셔서 다음 이야기가 어디있냐고 하셨다.
'1부는 여기에서 끝나요, 2부는 구입해서 읽어주세요.'라고 말씀드리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내 글이 계속 읽고 싶어질 만큼 재미있었다는 말씀이셨을까?
나는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고 싶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 때부터 유페이퍼에 등록한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보는건 내 일과가 되었다. 책이 출간된 날에는 같은 글쓰기 모임의 회원분들이 많이 구입해주셨는데 그 이후에는 너무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교보문고를 통해서 모르는 독자분이 결재를 해준 것을 보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분을 알 수만 있다면 찾아가서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또 그로부터 일주일 후 판매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익명의 구매자가 띄엄띄엄 구매를 해주고 있다. 감사하고 신나는 일이다.
전자책을 한번 출간해보니 계속 하고 싶어졌다. 11월 교육청 영어교육강의가 끝나고 1주일 후 강의자료를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2024년 담임을 했던 반 아이들과 학급문고를 또 다시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그 사이 아부다비 글들을 엮어서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2024년 12월28일 오후 1시 백란현 선생님이 진행하신 공저 작업에 참여해서 '읽고 일하며 살아간다' 책이 출간되어 창원집으로 배송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공교롭게 같은 시각 나는 부산 큐라운지에서는 '나에게 주는 위로' 책 출간기념회에 참석중이었다. 2권의 공저책이 한꺼번에 품에 들어왔다. 2024년을 마무리하며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 총 6권 출간된 것이다.
하지만 내 출간이야기는 이게 대서사시의 서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2025년 기필코 개인저서를 출간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잘 쓰고 싶다. 책을 여러권 출간했어도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 완성된 책을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책 한권이 세상으로 나왔고 내 이름이 거기에 실려있다는 사실은 좋았지만 그 안에 실린 내 글은 다시 봐도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쓸 것이다. 이번에는 시간을 들여, 정성을 들여 잘 쓰고 싶다. 공저 두 권을 쓸 때는 변명같지만 정말 가장 바쁜 한 때를 보내고 있어서 글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이제 원고 마감합니다'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당장 일상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일들 때문에 글을 더 다듬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교사에게는 방학이라는 변명할 수 없는 집필에 적합하고도 절묘한 시기가 주어진다. 그래서 2024년의 마지막과 2025년의 처음은 글쓰기로 보낼 것이고 그것이 2025년에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를 바래본다.
2024년 12월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