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첫 출근
교장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곧장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시작의 시작에 불과했다. 먼저 짧은 동영상을 찍어 아미티 본사에 나의 입사의사를 밝혀야했다. 교장의 비서는 나에게 5분의 시간을 줬다. 아미티 본사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보라는 거였다. 5분이 지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Hi, there. This is Hyekyong. My two kids are students here and I always have been appriciated Amity for what you provide to pupils. I love Amity. You guys are doing amazing and my girls are so satifised. I've been wanting to contribute to Amity society more and I hope I could share what I can do with pupils and school community. as I work here
본사에서는 곧 Voluntary work contract를 진행해도 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부다비에는 한국의 교육부 같은 기관인 ADEK이 있었다. ADEK에 서류들을 넣고 통과해야 아부다비의 학교에서 정식적으로 근무할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1급 정교사 자격증과 대학원 영어교육과 석사 졸업증, JLPT 2급 증명서 또 Oregon대학에서 연수했던 기록들 등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모아 모조리 제출했다. 그 중에서 가장 도움이 된 서류는 정식 교사 자격증이었다. 그것 덕분에 나는 별 다른 무리없이 아미티에서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교육부 ADEK(아덱) 홈페이지에 직접 나의 기본사항 및 관련 증빙문서들을 입력해서 인증이 완료되어야 했다. 학교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의 신분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아덱은 필요한 일을 잘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달 여에 걸쳐 모든 입사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학교에 출근하는 첫날이 되었다. 비록 무료 자원봉사자이지만 힘든 관문을 통과하고 입성하는 학교의 교문을 지나는 느낌은 학부모일 때와는 달랐다. 학교 교직원 카드가 주어졌고 그것을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카드를 찍어야만 열리는 문이 있었고 그것을 통과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당당히 그것들을 누렸고 또 그 안에서 나의 열심을 발휘하기 위해 애썼다. 보수를 받지 않지만 그곳에 있는 이상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나는 먼저 중등부에 배정이 되었다. 학생들 중에서는 한국에서 입시위주의 영어공부만 하다가 모든 과목이 영국식 영어로 진행되고 과제와 시험까지 쳐야하는 현실이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부다비에 오기 직전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영미문학을 공부하고 있었기에 영어과의 문학수업에서 도움이 될수 있을거라는 학교의 판단에서였다. 한국 학생들을 먼저 돕기 위해 영어수업에 투입되었고, 함께 수업을 듣고 난 후 수업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관련한 문학적 이론을 설명해 주었다.
영어 수업에서는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등을 읽고, 그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과제가 대부분이었다. 따로 교과서가 없었기에 교사들은 매 수업을 자신의 역량과 주제를 선택해 진행했고 그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처음 그런 식의 수업을 접했을 때는 체계가 없어보여 실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형화된 교과서 수업보다 교사중심교육과정의 수업이 지닌 이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 교사마다 다른 고유의 전문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교사교육과정을 경험하면서 내가 느꼈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학습목표를 가지고 교사들의 해석과 수업에의 적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전문성을 녹여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역사교과에서 구석기 시대의 생활 알기이 학습목표라면 관련 책을 가지고, 영상을 제작해서, 보드게임을 만들거나, 연극을 구성하거나 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한 시간에 끝나지 않으므로 교사들은 보통 프로젝트에 맞게 수업을 구성하여 진행한다. 한국의 교과서가 한 시간의 분량에 맞게 글을 쪼개서 읽고 단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 하고 그것을 익히기 위한 작위적인 노래나 놀이를 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둘째, 학교와 학생, 교사의 상황에 맞는 융통성있는 교육과정의 운영이 가능하다. 영어 전담교사로서 여러 반을 수업해보면, 같은 학교, 같은 학년 학생일지라도 반에 따라 분위기와 학습성취수준이 다르다. 이것은 학생들의 구성에 따른 상호작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인데, 이와 함께 그들을 이끄는 담임 선생님이 만나면 그 반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 때에 교사는 학생들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수업을 계획하면 그 반만의 특성화된 수업이 구성된다. 작년 우리반 아이들은 밝고 통통튀는 아이들이 많아 다양한 외국노래를 배우거나, 발표수업을 하거나, 영어연극을 반 친구들 앞에서 선보이는 것을 수줍어하지 않고 즐겼었다. 그런데 올해 동일한 주제로 여러 반에 영어수업을 하면서는 유독 조용하고 차분한 반 아이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학생들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활동도 구성하지만, 그들에게 특화된 영어보드게임이나 쓰기활동을 더 계획하기도 한다.
셋째,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스스로 교육과정의 일부라는 인식이 주어진다. 교사교유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사가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진행하는 동안 계획단계에서부터 실행 및 피드백 단계까지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교사교육과정을 잘 운영하려면 학생들의 과제에 대한 이해와 요구를 바탕으로 해야하기에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흥미로운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게 되고, 학생들 또한 해당 수업에 주체로서 참여하면서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끝나면 함께 과업을 이루었다는 큰 성취감을 함께 지니게 된다.
넷째,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 및 학교 행사를 유연하게 주최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학습 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교육을 경험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데에 학교가 동의하면 학교 단위로 재미있는 행사를 주최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네셔널데이 같은 것인데, 이런 행사는 학부모도 그 과정에 참여하여 활동하게 된다. 전체 과정을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학교와 학생, 교사, 학부모가 교육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프로젝트를 일끌어 나가고 성황리에 마치는 일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학교가 기본 계획을 내어 놓고 그 계획에 따른 세부 계획은 교사, 학부모, 학생이 개별적으로 설계하여 구성원들을 동의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수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유연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갖지 않으면 힘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학교가 한계 설정을 정확하게 하고 점검의 절차를 잘 따르면서 교사, 학부모, 학생을 독려하니 다양하고 의미있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주최되었다. 한달에 한번 학교 로비에서 진행하는 아침 콘서트나, 분기마다 학교 카페에서 오후에 진행되는 악기 연주 및 노래, 공연 등을 발표하는 발표회, 또 핑크리본데이, 북캐릭터데이, 오드 삭스 데이 등등 다양한 행사가 끝없이 펼쳐졌다. 이러한 행사에 교사로 또 학부모로 참여하면서 느꼈던 가장흥미로웠던 점은 행사를 주관하는 학교나 참여하는 그 누구도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한국 학교나 공동체에서 행사를 하면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많은 반복을 거치고 꾸며낸 듯 찍어낸 듯한 뽑기 인형같은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을 자주 보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실수하는 학생이나, 어설픈 선생님과 학부모를 끌어안아 그 자체를 하나의 의미있는 경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니 준비 과정에서부터 끝날때까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해서 즐겁고 유익한 인상이 남을 뿐, 실패자도 낙오자도 없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오니 이러한 문화가 한국에서도 점차 적용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학교에서는 각종대회보다 페스티벌이니 축제니 하는 말로 수업을 나눔하고 교육구성원 각자의 능력이나 역량을 발휘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용어의 바꿈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다. 여전히 이런 과정에서 정확성과 절차에 매달리느라 본질이 가진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유교문화에서 오랜 시간 정착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리라. 그럴수록 나처럼 나니나 깨비가 이 딱딱함을 풀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수 있게 되길 바란다. 분명 한국에도 존재할 것이다. 모두가 비슷한 탈을 쓰고 있지만 각자 그 안의 다채로움을 펼치며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