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흔들리는 마흔을 견딘 시간, 아부다>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하다- 학교는 나의 퀘렌시아- 눈물나고 눈부신 날


영국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2023년 2월의 둘째 주 금요일이었다. 그날, 나와 딸들은 4년간의 아부다비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떠나기로 되어있었다.


또한 그날은 공교롭게도 1년 중 아미티에서 가장 화려한 날, ‘인터네셔널 데이’이기도 했다. 운동장에 각국의 부스가 꽉 찼다. 부스마다 해당 국가의 국기를 달고 있었고 그 안에는 내 친구들 들어가 있었다.


저마다 자신의 나라 전통 옷을 입고, 음식을 맛볼 수 있게 준비해 놓고 진귀한 전통 물건들을 가져와 선보이느라 바빴다. 중앙 무대에는 아침 일찍부터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되었고 오후 2시쯤이면 모든 행사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나와 딸들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당일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 부스에서 일손을 돕다가 다른 부스를 돌아다니며 체험하기도 하고, 가장 크게 마련된 UAE 부스와 그 옆에 거짓말처럼 데려온 낙타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향긋한 아라빅 커피를 홀짝이며 달콤한 중동 디저트를 맛봤다.


그리스 부스에서는 새파란 샊으로 시원하게 펄럭이고 있는 그리스 국기 옆에서 차지키를 먹고, 호주 부스에서는 캥거루 사진 앞에서 이웃사촌 타샤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절친 사라가 운영하는 이라크 부스에서는 아미티에서 단 한명, 이라크를 대신한 누라가 준비한 부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라크 간식인 돌마를 먹고 팔레스타인 부스에서는 또 다른 절친 누라가 준비한 팔레스타인 팔찌를 선물받고 팔에 둘러보았다.



그들이 부스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행사를 운영하기 위해 애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부스를 마련하는데 담긴 자신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알기에 누라와 사라의 부스에서는 내가 마치 안주인인것처럼 한참을 그녀들과 함께 그곳을 지켰다. 그날은 마치 아무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아부다비의 여느 날과 같은 아미티의 하루였다. 하지만 그날 행사가 끝나는 대로 우리는 공항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고, 정신없이 진행되는 행사 중간중간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 울게 만들었다.


나는 바보처럼 한복을 입고 이 부스 저 부스를 웃다 울다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날 찍은 사진에 나는 한복 차림에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온갖 나라 부스 앞에서 나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의 아미티 마지막을 그렇게 남기고 싶었다. 눈물나고 눈부신 아부다비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4년여의 시간이 조금 넘는 아부다비 생활이 그렇게 끝났다. 햇살 눈부신 아미티의 운동장을 처음 아부다비에 온 사람처럼 걸어다니며 그동안의 아부다비 생활을 떠 올려 보았다. 울고 웃고 가슴 아프고 행복했던 날들이 저만치 멀어져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기억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길을 잃고 자리를 찾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아부다비와 나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언제고 다시 이 곳에 돌아올 것이고, 이 곳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며, 늘 마음에 품고 살게 되리라는 것을.


이 곳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고, 내 친구들이 있는 곳이며, 나의 마흔을 기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곳은 내 심장의 반쪽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2023년 이후 2025년 현재까지 나는 딸들을 데리고 매년 아부다비에 방문하고 있다. 내 영혼을 채우러 내 마음을 위로 받으러 간다. 언제나 눈부신 아부다비의 태양이 나를 반겨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나는 오늘도 아부다비에서 배운 사랑과 헌신과 감사로 하루를 살고 남은 생도 그렇게 살 것이다. 고마워 아부다비, 너라서 나의 마흔은 견딜 수 있었다. 여름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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