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서관
학교에서 돌아오면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누나는 나와 놀지 않았다. 집엔 친구가 될 만한 물건들이 없었다. 전에 살았던 온천 마을에선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책을 빌려와 읽곤 했다. 세운빌라 주변엔 그런 도서관은 없었다. 대신 이상한 도서관이 있었다. 낡은 버스를 개조한 이동도서관이었다. 그땐 열악한 주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 때문일 거란 생각은 못했다. 좌석을 뜯어내고 합판으로 책장을 만든 곳. 장소인지, 이동 수단인지 모를 공간이었다. 늘 이상한 도서관을 떠올리면 눅눅함이 느껴졌다. 매연이 피어오르는 골목을 지나 그곳에 오르면 해묵은 종이 냄새가 났다.
버스 안은 어슴푸레했다. 복도를 지나 책장을 찾았다. 모험과 판타지 소설이 쌓여 있는 책장으로. 이영도 작가의 책도 있었고, 이우혁 작가의 책도 만났다. 책 뒤엔 봉투가 붙어 있고, 도서대여 카드가 들어 있었다. 카드를 꺼내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작게 인사했지만 들리지 않았을 거다. 아저씨는 낚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댔다. 친절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았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간혹 들어왔는데, 담배를 끄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대부분 아무도 없는 그 장소가 좋아서 자주 찾았다.
세계를 돌며 악당들을 무찌르는 청년을 주제로 한 판타지 소설과 무공을 쓸 수 없는 청년이 기이한 스승을 만나 무협 고수가 되는 소설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는 비웃었다. "무협 책을 읽는다고 뭐가 달라지냐?"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잠시라도 이 가난을 벗어나려는 내 마음이 대낮의 수박밭처럼 훤히 보인다는 듯이. 나는 대꾸하지 않고 이불 속에 들어가 책을 폈다. 꿉꿉한 이불속에서 술에 취한 아빠가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는 술병이 굴러다녔고, 창 밖은 늘 어두웠다. 하지만 책 속 세상은 달랐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주인공이 사람으로 변신한 용과 싸웠다. 아빠가 계단에서 넘어질까, 누나가 또 문을 잠그지 않을까 걱정이 덮였다. 책을 읽으며 잊었다.
다시 이동도서관에 갔다. 매연을 피해 올라갔다. 종이 냄새가 익숙했다. 책장에서 낯선 문장을 만나고 책 표지에 붙어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을 눈에 담았다. 아저씨는 여전히 담배를 피웠다. 카드를 내밀고 책을 빌렸다. 집에 오는 골목이 차가웠고, 손은 시렸다. 문을 열었을 때, 아빠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지안이냐?" 아빠의 목소리는 작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책을 펴고 읽다 눈을 감았다. 온천 마을에서 살던 시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