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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해지고싶다 Apr 29. 2024

30대 외벌이 가장의 일상이야기(7)

맥주 한 잔 할래요?

  작년 겨울, 봄이가 태어나고 처음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둔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산 노오란 커플링. 밤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겼던 오글오글 거리는 해님 달님 편지. 마지막으로 함께 찍었던 수많은 커플 사진들. 그때의 우리는 아주 참 뜨거웠다.


  4살 연하의 아가씨와 만난 지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15년은 20살의 호기심 많고 생기발랄한 수달을 세상 모든 것에 초연한 티벳여우로 진화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육아에 지쳐 평소에는 무표정한 겨울이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는 아직 20살의 아가씨로 보이는 건 아직까지도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오늘은 한 껏 더 지쳐 보였기에 응원하기 위해 카톡을 보낸다.


  '맥주 고고?'

  'ㅇㅇ'


  봄이가 자는 늦은 밤. 나는 시원한 맥주에 곁들인 간단한 야식을 조리한다. 바삭바삭한 감자채 전과 불 맛 가득한 불막창을 준비한다. 시원한 캔맥주에 고소하고 바삭한 감자채 전 그리고 육식인들의 하이라이트 불막창. 무표정했던 겨울이는 잘 차려진 안주상에 상큼했던 20대의 겨울이로 돌아간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남편의 요리솜씨에 감탄하는 겨울이. 역시 요리 잘하는 남편이 최고라고 엄지를 척 내민다. 둘이서 마주 보며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 봄이 얘기를 하지만 예전의 추억도 떠올려본다.


  군대 갔다 온 예비군 아저씨에게 어쩌다 홀렸는지 물어보지만 하면 겨울이는 배시시 웃기만 한다. 아마도 내 요리솜씨에 감탄하는 것을 보니 음식 취향이 비슷해서이지 아닐까라고 지레짐작해 본다. 겨울이의 20대와 30대를 온전히 함께 했기에 둘만의 추억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이렇게 식탁에 앉아 자주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가 마를 날이 없다. 


  동아리 동생에서 여자친구를 거쳐 지금의 아내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할은 달라졌지만 우리는 함께였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오늘도 육아로 고생한 당신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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