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어른왕자>
우아한 클래식이 나오고 있고, 거실에 아줌마가 머리를 말아 올리고 우아하고 평안히 앉아 있다. 무대 상단 중앙엔 태극기와 함께 2막에 등장했던 왕의 사진이 함께 나란히 놓여져 있다.
아줌마 : (기지개를 펴며)
오늘 같은 엘레강스한 날에 잉글랜드 녹차에 우유를 섞어 마시면 …
(차를 맛 보고 아리송하고 괴이한 표정이 되지만 억지로 삼킨다)
마치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
(생각이 안 나는 듯 머리를 굴리다 다시 생각이 난듯)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엘리스베스 여왕이 된 것 같다니깐…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으며 갑자기 거실 한바퀴를 돌면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아마 영국에 태어났으면 엘리스베스라고 이름 지을라했다니깐 하하하하하하
(녹차를 잠깐 손에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으면서)
다…다시 태어나도 이…이건 못 먹겠다.
(카톡 카톡 카톡 효과음)
아줌마 : (도로 침대에 누워 노안이 온듯 멀찌감치 핸드폰을 쳐다본다)
호호호호.. 차곡 차곡 잘 넣어주고 있군, 나의 사랑스러운 노예들… 어디보자… 60만원 40만원 80만원 … 6… 6만원?
(아까까지의 교양있던 태도는 싹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처럼)
이 호로 새끼가 또 0을 빼고 넣네. 아놔 증말 ….
(이때 무대 한편에 등장한 어른왕자를 발견)
어머나, 누구???? 뭐 배달 시킨 거 없는데…
어른왕자 : 안녕하세요. 전 B612 행성에서 온 어린왕자라고 합니다.
아줌마 : B뭐요?? (잠깐 고민하다)
아… 집사 대행해주는 서비스구나. 어머머,, 여기 컨셉 좀 봐 딱 내 취향인데 호호호호호호 이런 아크로바틱하면서도 프로방스한 컨셉 맘에 들어요. 아주.
어른왕자 : 이….이게 무슨 말이지… 빵상 아줌마 같기도하고, 외계어인가?
아줌마 : 호호호호호호 왜 그러고 서 있어, 어서 여기 이 지저분한 것들 좀 치우고 청소부터 좀 시작해요.
(청소 도구를 건넨다)
어른왕자 : (얼떨결에 청소 도구를 건네 받고)
난 내 행성 말고는 처…청소를 해본 적이 없어요.
아줌마 : 호호호호, 나도 그래요. 나도 청소를 내 손으로 해본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어서 하세요.
어른왕자 : 저… 이..이거 하면 밥 좀 주시나요?
아줌마 : 밥? 아… 브런치 브런치 줄께요.
어른왕자 : 브런치요? 곧 있음 저녁인데
아줌마 : 어, 그래요. 브런치… 그러니까 브런치 준다고
(잠깐 둘 사이 어색한 분위기, 아줌마 이내 눈치 채고는)
앗하하하하하 브런치가 뭔지 모르는 구나 브런치라고 그 베이컨에 소시지에 계란 후라이에 뭐 그렇게 해주는 거 있어요. 보아하니, 흙숟가락 들고 태어난 아이 같은데 뭐 유학 안 다녀오고 외쿡 문화 모르면 뭐. 그럴 수 있지.. 암튼 이따가 브런치 줄께요.
어른왕자 :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브런치가 언제부터 메뉴 이름이 된거야?
(어른왕자 어색한 동작으로 청소를 한다. )
[그때 갑자기 문밖이 소란스럽다가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아줌마 : 아니, 누가 이렇게 초인종을 교양 없게 눌러. 이봐 집사 좀 나가봐요.
[화가 난 수진이(3막의등장인물) 아들(인사팀장)과 함께 등장]
수진 :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줌마 : 어머머,, 우리 아들… 얜 누구니?
수진 : (당황해하는 아들이 뭔가 설명하려고 하는데)
안녕하세요. 어머님, 전 아드님의 아이를 갖게 된 이수진이라고 합니다.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다가 수진에게 명치를 얻어맞고 무대 한켠에서 콜록댄다)
아줌마 : 어머어머,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들 : 아,,,쿨럭 쿨럭… (뭔가 설명을 하려는데 아파서 설명을 못하는 아들을 보고 왕자가 다가가)
어른왕자 : (아들을 좀 쓰다듬어 주면서)
내가? 내가 대신 설명해??? (한숨을 잠깐 쉬고)
흠… 이게 아마 여기 이 분이 아드님네 회사 직원 분인 거 같고, 여기 뱃속에 애가 생긴 거 같고, 아드님이 아마 결혼을 하신 걸로 아는데 그 부인이 또 애를 갖고 있고….. (설명하다 빡친 왕자) 와…. 정말 개쓰레기 새끼 야, 누군 결혼 한번 못하고 있는데 아주 정자왕 나셨어요. 정자왕… 아주 신났네 신났어 무슨 지금이 농번기 시즌이냐? 씨를 죄다 뿌리고 다니게? 이 새끼 진짜 (귓대기를 부여잡으며) 아오 넌 이 새끼야 일루와 머리에 모내기 좀 해줄라니까
아줌마 : 어머머머머머.. 지금 누구 아들 귓대기를 잡는거야 이 돼지 같은 게 (둘 사이를 뿌리쳐놓고 아가씨를 쳐다보며) 그러니까 아가씨가 우리 아들 애를 가졌다?
수진 : (굉장히 당당하다) 네, 가졌어요. 아들이에요.
아줌마 : (갑자기 표정이 바뀜) 어머머머, 아들이에요? 아들?
아들 : 엄마~!
아줌마 : (태도가 돌변) 너 좀 가만있어봐봐 아들? 어머, 아가씨 아직 젊은 거 같은데 아들이라고?
수진 : 네, 아들입니다. 그 언니 노산이쟎아요. 전 초산이에요
아줌마 : 우리 애는 맞고?
아들 : 엄마 쫌!
(아들을 한켠으로 데려가는 아줌마)
아줌마 : 니 애는 맞어?
아들 :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아줌마 : 유전자 검사 같은 거 해보면 되니까.. 일단 나아보라고 해
아들 :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아줌마 : 니 처 애는 딸이쟎아
아들 : 아니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말을 해
아줌마 : (지금까지 쓰던 표준어에서 갑자기 구수한 사투리로 돌변하며)
아따~! 아들이라야 이 재산을 물려주지~!! 여자애면 다 남의집 밑구멍으로 들어가는겨~!! 정신차려 이것아~!!! 그러게 왜 늦결혼에 나이 찬 여자는 만나갖고,,, 니가 뭐가 부족해서 …!
수진 : (엄마 아들 사이를 갈라놓고, 인사팀장 팔짱끼며)
우리 애 맞아요. 사귀는 동안 딴 사람이랑 한적 없으니까. 우리 애 맞다구요. 어머님, 저희 결혼하게 해주세요. 제가 아들 셋은 더 나아드릴께요.
아줌마 : (뭔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어머 아들 셋? 으흐흐흐흐흐흐 우리 아들이 (아들 엉덩이를 때리며) 옛날부터 좀 실하긴 했지
(갑자기 청소 도구를 집어던지고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들며 소리치는 왕자, 순간 무대에 모든 사람들의 행동은 멎는다.)
어른왕자 : 동작그만! 내가 진짜 이거 안 쓸라고 했는데 이건 위기 상황이다 위기 상황, 이게 위기 상황이지 뭐가 더 위기 상황이냐 와,,, 이건 뭐…. 양심도 없고, 배려도 없고, 서로 지 생각들만 하고 앉아있고, 아주 개판이네. 개판이야. 무대 중앙의 왕의 사진을 가르치며, 너는 대체뭘 한거야? 너가 대책이라며, 너만 왕이 되면 다 좋아질꺼라며? 피가 끓어오른다. 피가 끓어올라… 진짜, 느그들 전부 우리 별로 좀 데려가야 쓰겄다. 헬헬 하는데 진짜 헬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마, 이제 B612행성은 지옥의 별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가자 이놈들아!
(아들, 수진, 아줌마를 모두 한데 묶는다)
[BGM : Straight to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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