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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얀 May 06. 2024

3막 MZ행성

<희곡> 어른왕자 


무대 중앙에 사무실로 보이는 셋팅, 20대 젊은 여자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해진 : 와.. 팀장 진짜 개꼰대.. 짜증나 죽겠어 정말 .. 


수진 : 맞아 맞아, 지난번 면담하는데 억텐 쩔더라. 


해진 : 걔한테 언제 찐텐 나온적 있냐? 실력은 뭐 쫌쫌따리한거 같은데 … 지랄은 아주 레게노

급이라니까  


수진 : (맞장구 치며 억지로 웃는다) 와… 레게노 


해진 : 뭐냐 너도 억텐이냐? 


수진 : 에이.. 왜 그래 완내스 해진님, 개그코드 완전 내 취저면서 


해진 : (갑자기 급정색하면서) 수진님, 우리가 암만 수평조직이라도 내가 1년 먼저 입사했거든?

불재 하지 말자. 


수진 : (약간 불편해하면서 방백) 와, 씨발 졸라 킹받네… 진 일하면서 맨날 핑프질하면서 이거 내

가 지보다 연봉 많이 받는 것 땜에 견제 들어오는 거 아냐? 이거 아무래도 킹리적갓심이야. 

이거.. 내가 지보다 실력 더 좋은 거 사람들이 뻔히 다 아는데 


[어른왕자 등장, 왕자가 등장하면 수진과 해진은 자리로 돌아가 일하는 척한다] 


어른왕자 : 와.. 정말 하마터면 통구이 될 뻔했네 ..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카톡 효과음과 함께 스크린에 다음 메시지] 


수진 : 저 사람 뭐임? 


해진 : 몰라, 오늘 새로 이사온다 했쟎아 


수진 : 이사? 맞아?? 퀵 아냐? 복장봐 해주세요 뭐 그런 거아냐? 


해진 : 긍가? 


왕자가 다가가 인사한다 


어른왕자 : 안녕하세요? 


해진 : (왕자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톡을 누르면 왕자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어른왕자 : 응? (핸드폰을 확인하면 무대 스크린에 슬랙 메시지가 뜬다) 

*Slack은 스타트업들이 주로 쓰는 업무용 메신저 프로그램입니다. 


해진 : (여전히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다.) 네,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어른왕자 : (핸드폰을 쳐다보고 해진을 쳐다봄, 잠시 어이없어 하다가 옆자리로 가서 다시 인사해본다) 

안녕하세요? 


수진 : (마찬가지로 왕자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책상 서랍 열어서 파일철 하나를 꺼내 책상 앞에 

놓아둔다. 파일철엔 이렇게 쓰여있다. “업무 외적인 말 붙이면 성희롱 신고”) 


어른왕자 : (어이없어 하며) 와….뭐야, 이거 .. 얘네들 나랑 비슷한 또래 같은데 (순간 해진과 수진 동시

에 왕자를 잠깐 째려보다 키보드를 마구 친다)


[카톡 효과음과 함께 스크린에 다음 메시지] 


수진 : 아, 뭐야 이 머쓱타드 


해진 : 스낵코너 찾는 거 아냐?  


수진 : 아, 군싹돼지 같이 생겨서 알아서 찾을 것이지 그냥 만반잘부 하고 보내 


[이때 멋지게 생긴 인사팀장 등장한다. 갑자기 태도 돌변하는 해진과 수진. 수진은 얼릉 파일철을 다시 책상안으로 넣어둔다.] 


인사팀장 : 아, 안녕하세요. 오늘 오신다는 사업부 이사님이시군요. 


어른왕자 : 네? 


인사팀장 : 반갑습니다. 전 인사팀장입니다.  


어른왕자 : 네? 인사 뭐요? 


인사팀장 : 대기업에서 오셔서 좀 낯설으시죠? 하하하 요즘 스타트업은 다들 이렇습니다. 이름 끝에 님자만 붙여서 소통하고, 모든게 MZ세대들에 맞춰 문화가 형성되어 있죠. 이런 게 요즘 힙한 기업 문화에요. 하하하하하하 


어른왕자 : 아니, 저는 이사인지 뭔지하는 사람이 아니고, 여행 중에 있는 왕자에요. 어린 왕자 


인사팀장 : (잠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의아해하다가 이내 눈치챈듯 표정 변하며) 아유, 우리 이사님 정말 적응 빠르시다. 그래요. 여기서 직급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사인지 뭔지가 뭐가 중요해요. 일말 잘하믄 됐지. 연봉도 많이 받으시는데… 아시죠? 여긴 대기업이랑 다르고 스피디한 조직이라서 이사님 실력 못 보여주시면 (목을 긋는다) 금방 아웃입니다. 아웃. 


어른왕자 : 아니, 그 말이 아니쟎아요. 그게 아니라…. (답답해하다 방백) 와, 진짜 이 행성은 정말 지들 하고싶은 말만 하네… 뭔 소통이 이렇게 어렵냐. 


[인사팀장은 이내 할 일이 생각난듯 해진 옆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자리를 옮겨가서 공손하게 두손을 모으고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 키보드를 두드린다. 왕자는 인사팀장 뒤로 가서 메시지를 같이 본다] 


[스크린에 업무용 메신저 슬랙 화면이 뜨고 다음 메시지가 뜬다.] 


인사팀장 :  안녕하세요. 해진님, 계약 종료 면담 하셔야 하는데요


해진 : 네, 안녕하세요. 저 지금 하는 일이 있는데, 업무 우선 순위상 팀장님하고 면담은 우선 순위가 좀 떨어져서 지금은 좀 곤란할 것 같네요. 


인사팀장 : 아, 네, 저… 그러면 지금 하시는 일은 언제쯤 끝날까요? 


해진 : 음…. 한 6시 즈음? 


인사팀장 : 아,, 네 그럼 6시에 다시 오겠습니다. 


해진 : 아, 네 저 6시면 퇴근 시간이어서 오늘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네요 


인사팀장 : 아.. 저 해진님 계약 종료일이 오늘인데 오늘 계약 종료 면담이 어려우시다구요? 


해진 : 네, 퇴근 시간이쟎아요. 


[인사팀장, 뭔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다가 왕자와 눈이 마주친다. 왕자는 그런 인사팀장이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인사팀장 머리를 긁적이다] 


인사팀장 : 하하하하하,, 우린 힙한 스타트업이니까요. 요즘 MZ들과 함께 일하려면 이런 건 당연한 거에요. (과장된 몸짓으로, 왕자의 뱃살을 치며) 우~리 힙한 이사님도 얼른 적응하셔야 합니다


[인사팀장, 바쁘게 수진 자리 쪽으로 옮겨간다. 왕자도 따라간다. 다시 공손히 앉아 키보드를 친다] 


[스크린에 업무용 메신저 슬랙 화면이 뜨고 다음 메시지가 뜬다.] 


인사팀장 :  안녕하세요. 수진님, 그래서 퇴사하려는 이유가 수훈사원으로 뽑히지 않아서라구요? 


수진 : 네, 대체 제가 왜 수훈 사원으로 뽑히지 못하는 지 이해가 안가요. 수훈 사원을 뽑는 기준이 뭔가요? 


인사팀장 : 자세한 산출 공식을 공유할 순 없지만 대략적으로 말씀드리면 회사에서 기대하는 기본적인 업무에 더해 추가적인 업무를 수행한 경우와 그로인해 보상을 얻은 경우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고, 여러 결정들은 팀장이 최종 평가를 진행하게 됩니다. 


수진 : 아니, 그러니까 추가 근무를 하거나 야근을 하면 수훈 사원이 되는 거에요? 나참.. 만일 그렇게 평가한다면 제 한시간은 다른 팀원들 한시간과 다르다구요. 전 원래 손이 빠르고 머리가 좋아서 내 한 시간의 가치는 다른 애들의 2-3시간의 가치가 있다구요. 


인사팀장 : 아…. 네, 뭐 그럼 수진님의 1시간의 평가를 좀 더 높게 해드리면 회사에 남을 의사가 있으신걸까요? 


수진 : 음…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일지 모르겠지만 들어보고 생각 좀 해볼께요. 아, 그리고 저 내일 병가를 좀 내야 할 것 같아요. 계단 올라가다 다리를 삐긋했거든요. 


인사팀장 : 내,,,내일은 프로젝트 마감이라 최종 제출일 아닌가요? 


수진 : 그런데요? 


인사팀장 : 근데 병가를 쓰시면… 


수진 :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를 쓰는데 뭐가 문제에요? 팀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팀장님도 은근 꼰데시네 


인사팀장 : (꼰데라는 단어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의자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안절 부절 못해하다 이내 무슨 좋은 생각이 난듯, 다시 포즈를 정돈한 뒤 과한 이모티콘과 Gif 이미지를 남발하는 메시지를 띄우며) 수진님, 연차 당연히 쓰셔야죠. 연차 쓰십쇼. 프로젝트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진님 제가 배드민턴 치면서 운동 코치한테 들은건데 몸의 무게 중심이 높으면 잘 넘어지실 수 있어요. 스쿼트 같은 하체 운동을 하시면 다시 안 다치실 겁니다. 


수진 : 넵 


[인사팀장 일을 잘 마쳤다는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팀장 : 안녕하세요. 삼영전자이죠? 세상 힙한 스타트업 ‘오늘만 산다’입니다. 다름아니라 내일 저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드랍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러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듯) 네네 죄송합니다. 이게 저희 스타일이라서요. (어이없어 하는 어린왕자와 눈맞으면) 이사님, 지시하신대로 드랍했습니다. 


어른왕자 : 뭐..뭐요???? 


인사팀장 : 드랍… 드랍더 비트…. 


어른왕자 : 와…… 나.. 정말… 아니…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 주섬 짐을 싸는 해진, 짐을 싸는 내내 핸드폰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책상 밑에서 여행가방을 꺼내 나온다. 자기 자리에서 마지막 인스타 사진용 셀카를 찍는다. 그리곤 쿨하게 퇴장한다.


[스크린에 뜨는 인스타사진 한장]


치열했던 1년, 여름이었다. #욜로 #꼰데들이여안녕 #내삶은이제시작 


그리고 이어서 일어나는 수진 어딘가 전화를 건다. 


수진 : 네, 노동청이죠? 성희롱신고 좀 하려구요. 네네 오늘 직장에서 꼰데새끼가 내 가슴 보면서 뭔 상체 중심 높다고, 하아 네네…. 컵이요? 음… 한, B하고 C 사이? 네네, 아니 그건 왜 물어요. 아놔 정말 너도 고소미 좀 처묵처묵하고 싶냐? 아오.. 내가 이놈의 헬조선 뜨든지 헤야지 온 사방이 꼰대 천지들이야 아주

 

인사팀장 : (통화내용을 듣고 당황해하며) 아니,, 수…수진님 수진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수진 : 오해요? 오해는 무슨 오해? 


인사팀장 : (한숨을 푹 쉬먀) 수진아, 너 왜 그래 정말 …. 오빠 힘들게  


수진 :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니, 그래서 그 아줌마랑 언제 이혼할껀데 … 


인사팀장 : 아니, 그건 내가 지난번에 말했쟎아. 애가 생겨서 힘들어졌다고 


수진 : 오빠, 오빠 그 떵떵한 아파트에서 아줌마 비위 맞추면서 살 때 난 큼큼한 고시원에서 살고 있어, 내가 그 아줌마보다 뭐가 못해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해? 인물이 빠져, 몸매가 빠져? 애? (골반에 손을 올리며) 애는 내가 더 많이 낫겠다. 정말? 


인사팀장 : 그게 그렇게 쉬운 예기가 아니야. 그거 다 아직 부모님 명의로 되어 있다고  


수진 : 부모님? 오.. 그래 너는 부모 잘 만나 유학 갔다오고 강남 아파트에서 애 낳고 잘 살고, 난  이렇게 쥐꼬리 같은 돈 받아가며 평생 일만하다 적당한 애 만나서 평생 대출 갚으면서 살라고? 하아 정말 킹받네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대사를 하며 퇴장한다) 여보세요. 여성가족부죠? 네네 (울면서 대사를 함) 흑흑… 제가 직장 상사한테 성추행을 당했어요.  


인사팀장 : 서…성추행… (머리를 감싸쥐고는) 수…수진아~~~!!!!! (쫓아 나간다)  


무대에는 왕자 혼자 남겨져 있다. 


어른왕자 : (어이없는 표정으로 밖에 나간 사람들 쳐다보고 관객을 번갈아 바라보며) 와….이건 뭐 사랑과 전쟁이야 뭐야? 내가 주인공인데 나 이번 막에 대사 거의 없었어… 콩가루구만 이 별은 뭔 소통이 이렇게 어렵냐 


[BGM on : Be! sokodomo] 노래 나오고, 어른 왕자 노래에 맞춰 립싱크하는 어른 왕자 1절 정도까지만 립싱크하며 나름 힙한 춤 추다가 조명 순간 아웃되면 노래만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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