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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un 20. 2024

남자친구와 술 때문에 싸운 썰 푼다

더 이상 남자친구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까지 사귀었던 남자친구들 대부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나보다 술이 좋지?" 그럴 때 나는 뻔뻔하게 대답한다. "에이, 술보다는 자기가 좋지." 반은 맞고 반은 거짓말이다. 누군가는 정말로 술보다 사랑했고(물론 같이 먹어주었기 때문에 좋아했다) 누군가는 술보다 덜 만날 정도로 모자라게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하든 덜 사랑하든 술은 항상 남자친구와 나의 사이를 갈라 놓았다. 술을 먹고 부주의하게 넘어지거나 남자친구의 집에 찾아가 괴롭히는 등의 행동을 해서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전에 사귀었던 2살 연하 남자친구는 나에게 "넌 너무 애 같아."라고 말하며 이별을 고했다.

▲글의 내용과 상관 없는, 며칠 전 먹은 와인 사진


그리고 며칠 전, 난 또 남자친구를 화나게 만들었다. 팔을 다친 지 하루 만에 "술을 먹어도 될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황당하다고 했다. 황당할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더 황당한 건 남자친구가 화난 그 순간에도 술이 먹고 싶었다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쉽게 화를 풀지 않았다. 전화 너머로 한숨 소리만 들려왔고, 그는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 없느냐는 나의 질문에, 남자친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무엇을 고민 중인지 몰랐기에 남자친구가 헤어질까 말까를 고민하는 줄 알았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를 고민 중이라는 건데? 우리 그만하자고?" 나는 혼자 급발진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내가 술 마시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사귄 지 고작 45일 만에 술 때문에 차이는 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지만, 그의 말은 나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맨날 술 먹고 싶어하는 알중자(알코올 중독자) 주제에 남자친구가 술로부터 나를 포기하는 건 또 싫었다. 나는 포기하지는 말라고, 대신 내가 술을 일주일에 세 번만 먹겠다고 선언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것도 많은 횟수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매우 적은 횟수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대답은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그는 먹는 횟수를 정해두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면서 대신 일주일에 6번 이상 먹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일주일에 술을 몇 번 마셨는지 세지는 않지만, 숫자로 들어보니 조금 충격적이었다. 내가 일주일에 6번 이상 술을 먹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술로 인해 걱정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 다짐을 보여주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만 먹을 거라고 강조했다. 남자친구의 화는 가까스로 풀렸다. 나는 정말로 술 때문에 남자친구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다. 또 다시 화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간 진짜로 차일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지난 날의 나를 원망하며 세상 슬퍼할 것이다. '이번에는 진짜로 사랑했는데' 후회하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술을 줄이겠다고 다짐한 게 수천 번은 되지만, 이번을 계기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정말로 술을 일주일에 세 번 이하로 먹겠다. 그리고 난 오늘 정말로 술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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