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어느덧 다음 달 이맘 때 즈음이면 우울증 1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난 오늘 넘어져서 손가락 두 개가 골절됐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다른 곳에 있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해서 공유 킥보드에 올라 탔다. 처음부터 운수가 좋지 않았다. 1차적으로, 자전거 도로가 없는 인도에서 주차돼 있던 다른 킥보드와 부딪혀 넘어질 뻔했다. (그때 알바를 지각하더라도 타는 것을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 후 좌회전을 하다가 차도와 자전거 도로 사이 난간에 부딪혀 넘어져 약지와 소지에 골절이 발생했으며, 무릎에는 찰과상을 입었다.
일단 넘어졌기에 쪽팔렸고, 무릎에서 줄줄 흐르는 피를 보는 순간 아픔이 느껴졌다. 손가락은 난간에 부딪혀 단순히 멍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점점 띵띵 붓더니 엄지손가락만해지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결과를 보시더니 "안타깝지만 골절"이라고 했다. 그렇게 난 반깁스를 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를 못 하게 되었으며, 내가 사랑하는 줌바 교실에도 못 갈 에정에 이르렀다.
집에 와서는 걷다가 넘어졌다고 뻥을 쳐야 했다. 부모 관점에서는 애들이나 탈 법한, 킥보드를 타다 넘어졌다고 하면 더 욕을 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병원비로 돈은 돈대로 버리고 아르바이트는 아르바이트대로 못 해서 돈 벌 기회 또한 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순간 엄마는 알게 되셨을 것이다.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길 가다가 실수로 넘어졌다고 해도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왜 이렇게 칠칠하지 못하냐, 오른손을 그렇게 다쳐서 일상생활도 못하게 됐다는 등 성을 내셨다. 남자친구도 내 손을 보자마자 화를 내진 않았지만, 자꾸만 걱정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다들 그렇게 다쳐서 어떡하냐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미 다쳤는데. 앞으로 안 다치면 되지!" 실제로 나는 이미 일어난 일은 빠르게 체념하고 다음을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키보드로 글을 쓰는 지금, 더 나아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기자 폼 어디 가지 않았네.' 오른손을 엄지와 검지 뺴고 모두 깁스를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타자 치는 것이 여간해선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수월했다. 물론 양손으로 칠 때보다는 느리지만 아주 느린 정도는 아니다. 점점 속도도 붙고 있다. 난 그렇게 이 상황에서 원영적 사고를 하게 됐다. '손가락이 골절돼서 반깁스를 하는 바람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줄 알았더니 나 이 정도도 할 수 있잖아? 이런 상황에서 내 능력치까지 알게 되다니 나 완전 럭키비키잖아?' (원영적 사고란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인터넷 유행어다)
아직도 많은 수준의 우울증 약을 먹고 있고, 우울증에 걸린 지 벌써 1년이 된다. 그런데도 내가 긍정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고 대단했다. 정말로 그렇다. 이미 지나간 일을 한탄해서 뭣하겠는가. 그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더 건설적이다. 곧 다가올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들이닥치지 않은 일을 걱정해서 무엇하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현재뿐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며 미래도 예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곧 현재가 될 미래를 최선을 다해 대비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앓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찾아올 번아웃이었는데, 우울증으로 인해 일찍이 휴식기를 가지게 됐고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됐으니 나 완전 럭키비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