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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un 07. 2024

우울증 환자도 연애할 수 있어요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권리

나는 지난해 우울증 판정을 받은 후부터 엄마께 늘상 듣는 이야기가 있다. "너는 지금 연애할 때가 아니야." 나는 짜증스럽게 "연애 안 하고 있어!"라고 늘 답한다. 하지만 그 대답 속에는 어느 정도의 거짓이 섞여 있다. 내가 정신이 아프다는 이유로(사실 정신이 아프다고 말하기 싫다) 남자와 만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시기 때문에 으레 하는 대답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물론 엄마 몰래 썸도 타고 연애도 한다. 


사실 이해가 안 됐다. 남자를 만난다고 우울증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이 망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아프기 때문에, 사춘기 소녀마냥 남자를 만나서 잘못된 길을 갈까 봐 걱정을 하고 있다. 내가 엄마에게 남자를 만나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도 이 같은 까닭이다. 엄마는 내가 조금만 늦게 들어오거나 외출이 잦으면 바로 남자 만나고 온 것 아니냐고 의심부터 하신다. 나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설령 내가 남자를 만나러 나가도 허튼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 물론 걱정하시는 부분은 이해한다.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걱정하는 것이라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렇지만 세상이 흉흉한 건 내 탓이 아니지 않은가…….


이 글을 엄마가 보고 계신다면 또 복장이 터지는 소리를 한다며 답답해하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한다. 나는 남자를 만나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며, 남자 문제로 인생을 망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연애를 하더라도 그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다양한 사람과 여러 감정을 공유하면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게 연애니까. 게다가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끼)가 아니다. 다 부질 없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간간이 연락 오는 나의 옛 남자들(?)을 정중히 차단하고 있다. 


나는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성적인 끌림을 느끼게 되는 포인트는 무엇인지 등등.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이 있다. 나는 상식 이하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맞춤법. 이건 내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라고 맞춤법을 모두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할 순 없지만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틀린 것에 대해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은 좋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사람이 좋다. 일이 고될지라도 매사에 열심히 하려는 사람은 어딜 가서든 잘 살 것이라 확신한다. 또 한 가지,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이 차이를 신경 쓰지 않게 됐다.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나이가 많다고 성숙하고, 나이가 어리다고 미성숙하리라는 법은 없다. 남을 대하는 태도와 주변 환경 등을 보면 그 사람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기준에 부합하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도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는 조금 덜 덤벙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진득하게 해보려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렇다. 연애를 하든 하지 않든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빛이 난다. 그 빛이 너무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아졌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는 것을 잠시 중단했었지만, 신기하게도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어차피 죽는 인생인데 일찍 죽는 게 낫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차피 죽는 인생이니까 그 과정 속에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삶의 끝이 정해져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살아가는 매순간이 의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다가올 내일이 두렵더라도 우리는 태어난 이상 살아갈 권리가 있다. 삶의 고통 속에 허덕이더라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1분, 30분, 1시간, 하루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소한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요즘 그런 재미로 살아가는 것 같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것 같아도, 그날의 내 기분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 요즘 날이 좋거나 예쁘게 피어 있는 꽃이 있으면 바로 카메라를 켠다. 어른들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꽃, 나무, 하늘 등으로 설정해 놓으시는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기특하다. 연애할 자격도 충분하다.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나 자신이 기대된다. 우울증 판정을 받았지만 기쁨과 희망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는 행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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