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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un 07. 2024

알중자가 약을 끊었던 이유

윤택한 삶을 꿈꾸며

내가 공황장애, 우울증 등 질환을 겪으며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문득 심장이 삐르게 뛰었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넓은 공간에 가면 쓰러질 듯한 두려움이 나를 압도했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늘 했다. 그래서 돈이 다달이 꽤 듦에도 병원에 다니며 약을 꾸준히 먹어야 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약의 효과를 100퍼센트 신뢰하진 않지만, 약을 먹으면 플라시보 효과인지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최근 한 달 넘게 단약을 해야 했다. 웃기지만 늘 그렇듯 돈이 없어서. 누군가는 술 사먹을 돈은 있으면서 정작 꼭 먹어야 하는 약을 살 돈은 없다니 한심하다고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내 나름대로의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 했지만 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나는 헬스장이 쉬는 월요일 빼고 거의 매일 운동을 해왔는데, 화수목금요일은 줌바 2시간, 토요일과 일요일은 혼자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2시간 가까이 하는 식이었다. 힘든 운동이 끝나면 뿌듯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술 생각이 났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맛있는 안주와 술 정도는 먹어야지!'히는 알중자다운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여태껏 나를 망쳐왔다. 


약을 먹지 않으니 술을 아무리 마셔도 잠이 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정오가 넘어서 잠이 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면 또 아르바이트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4월부터 보쌈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운동-술-늦잠-아르바이트' 이 루트가 반복되니 삶이 윤택해질 리가 없었다. 언젠가는 이직에 성공한 동료들을 보며 남몰래 눈물 흘린 적도 있다. 맨날 술만 먹고 산 주제에 뭐가 억울하다고 울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들은 열심히 산 대가를 얻었을 뿐이고, 나는 아직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었다. 그 괴리감 속에서 나는 공기 빠진 풍선처럼 자꾸만 쪼그라 들었다.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한 건 불과 3일 전 정도부터다. 약을 꾸준히 먹을 때는 덜 했는지 모르겠지만, 술 생각은 여전히 나고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사실 "돈이 없어서요"라고 당당하게 답하지 못했다. 나는 우물쭈물대며 "병원이 멀어서 자꾸 미루다 보니……. 그리고 돈도……(없어서요)" 기어 들어가는 내 마지막 음성은 아마 못 들으셨을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은 늘 바쁘다. 내 대답을 대충 들으시고는, 그동안 증상은 어땠는지 빠르게 물었다. 그에게는 시간이 없어 보였다. 술 얘기는 차마 하지도 못한 채 불면이 심한 것과 폭식증이 다시 도진 것 정도만 빠르게 대답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대기실로 내보내졌다. 


나는 아직 의사 선생님께 할 말이 많다. "저는 아직도 술이 먹고 싶고요, 선생님하고 대화 나누는 이 순간도 술이 먹고 싶어요. 요즘 인생에 대해 해탈을 했는지 별 생각 없이 살긴 하는데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 또 술 생각이 나요." 나의 모든 문제는 최종적으로 술로 직결되는 식이었다. 


솔직히 밝힌다. 나는 술을 끊을 의지가 0에 수렴한다. 이 글을 작성하고도 나는 또 술을 찾으러 갈지도 모른다. 내가 술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분이 좋아져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아무래도 이유를 한 가지만 대긴 어렵다. 술 먹은 나 자신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그 이유를 명확히 찾을 때까지 나의 술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 에세이는 내 삶을 담기 위해 쓰기 시작했는데, 술을 빼놓고는 내 인생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 나조차도 황당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난 글을 올리고 나서 한 달 간 글을 또 못 썼었습니다. 꾸준히 연재하시는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저도 다시 한번 마음 먹고 독자 한 분에게라도 힘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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