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인간의 표본이다
나는 이 글을 연재 당일인 월요일 오후 10시 40분에야 쓰고 있다. 1시간 20분 후면 연재일이 지나서 글을 못 올린 셈이 된다. 주어진 일을 끝까지 미루는 것은 내 오랜 나쁜 습관이다. 학창시절부터 그래왔다. 어느샌가 나는 ESTP 특성상 마감일이 코앞에 닥쳐서 일을 처리해야 능률이 확 오른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며칠 정도를 남기고 여유롭게 일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능률이 오르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글을 미리 써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오후 10시 10분, 알바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오른손에 깁스를 한 채로 서둘러 타자를 치는 모습이 영 꼴사납다. 마음이 급해서 알던 단어도 자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난 세상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나처럼 데드라인이 임박해야 서둘러 일을 하는 줄 알았다. 내 주변에 나 같은(나보다는 약간 덜한) 사람들만 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번은 이렇게 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습관 때문에 인생을 망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실제로 나는 마음에 드는 회사의 입사 지원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이력서를 넣느라 몇 초 차이로 지원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 일주일 넘는 시간 동안 퇴고에 퇴고를 거치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지만 결국엔 마감 며칠 전 여유롭게 지원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채용 공고 사이트의 '이미 채용이 마감된 공고입니다'라는 메시지 앞에서 한참을 울어야 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해외 출장을 위해 여권을 발급 받았어야 했는데 출국 3일 전까지 여권을 발급 받지 않았다. 출국 일주일 전부터 '긴급여권'이라는 것을 당일에 발급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여권 발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5만 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듦에도 말이다. 결국 출국 이틀 전에야 긴급여권을 발급 받았는데, 이조차도 조건에 맞지 않아 발급 받을 수 없었다면 나는 회사를 더 일찍 그만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루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돈도 더 쓰게 되고 취업과 같은 절호의 기회 또한 놓칠 수 있다. 10분만 더 일찍 일어났다면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난 항상 택시 인생이었다. 그렇게 면접에 지각해서 최종 면접에 탈락한 적도 있다. 미루는 습관은 내 인생을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기어코 커다란 구멍을 내놓은 것 같다. 최근 손가락 골절 사고도 미루는 습관으로 인한 결과다. 아르바이트하는 가게까지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출발했으면 됐을 텐데 빠듯하게 출발해서 서둘러 가느라 속도를 내게 됐고, 좌회전을 잘못해서 넘어지게 된 것이다.
난 지금 게으른 인간의 표본이다. 이렇게 계속 미루다간 돈도 잃고 취업도 못하고 거지 인생을 반복할 수도 있다. 게으른 사람이 성공했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게으른 주제에 욕심은 많은 인간이다. 미루는 습관으로 인해 무엇 하나도 해내지 못한다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월요일 연재 마감을 40분 앞둔 오후 11시 20분, 나는 황급히 다짐한다. 나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항상 어떤 변수가 생기리라는 것을 기억하겠다. 항상 여유롭게 일하는 습관을 들이겠다. 당일 시작한 일은 되도록 당일 마감하겠다. 앞으로 더욱 당당한 황혜빈이 될 것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