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Jul 04. 2024

더러움의 역사에 대하여

청소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더러움의 표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부터 우울증이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친구들은 엄마가 씻겨주지 않아도 매일 같이 샴푸와 바디워시 냄새를 풍기며 등교를 했는데, 나는 4일은 안 감은 떡진 머리로 기름 냄새를 풍기며 교실에 입장했다. 초등학생 때는 다행히 친구들로부터 더럽다는 이유로 따돌림 같은 건 당하지 않았다. 4학년인가 5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슬슬 친구들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악취가 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반에서 급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설 때 나보다 키 큰 친구가 뒤에 서면 내 머리 냄새를 맡을까 봐 정수리를 막고 있었다. 웃긴 건 눈치를 그렇게 보면서도 씻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난 씻는 게 너무 너무 너무 싫었다. 당시 나는 위생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안 씻으면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거나 벌레가 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 보다. 내 생각에 나는 그냥 '당장 안 씻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친구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하게 안 씻은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어쩌다가 때 밀어주는 날 빼고는 스스로 씻지 않았다. 몸에 덕지덕지 붙은 때를 잘도 숨겨가며 중학생이 됐다. 중학생 때는 매일 교복 치마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때가 잘 끼는 발목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때밀이로 밀었다. 그런데도 묵은 때는 사라지지 않은 건지 뭔지 한번은 친구가 "너 발목에 때 아니야?"하고 지적한 적도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이런 적도 있다. 양말과 스타킹, 실내화로 발냄새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안 씻고 다녔는데, 앞에 앉은 친구가 "아 어디서 발냄새 나는데?" 이러면서 발냄새의 범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때 매우 당황해서 실내화 속 발가락들을 잔뜩 오므렸다. 그럼에도 나는 발냄새의 범인으로 발각됐다. (그때 나는 매우 자존심이 상했고 상처를 받았다. 내가 자초한 일임에도) 그 친구는 매우 웃으며 "야 황혜빈 발냄새 장난 아니야!"라고 놀리고 다녔다. 나는 다음 날부터 무조건 발을 샴푸로 빡빡 씻고 갔다. 그러자 친구도 더 이상 나를 놀리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내가 꽤나 더러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랑처럼 떠벌리고 다녔다. 아마 여고라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친구들과 안 씻기 배틀 같은 걸 했다. 당연히 나를 이기는 친구는 없었다. 나는 4개월 동안 목욕을 한 적 없다고 말했고 친구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나는 심지어 나의 더러움으로 친구들을 괴롭혔다. (물론 장난이다) 일주일 넘게 안 감은 머리를 친구의 필기 노트에 비빈다거나 냄새 공격을 하는 식이었다. 기름이 잔뜩 낀 나의 두피와 머리카락은 친구의 필기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번지게 했다. 친구들은 나만 보면 "너 머리 며칠 안 감았어?"하고 물었고, 내가 그렇게나 안 씻고 다닌다는 사실은 내가 모르는 다른 반 친구들에게도 전파됐다. 


다행히도 내 육신은 대학생이 되어 첫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상당히 깨끗해지게 된다. 나는 CC(캠퍼스 커플)였는데, 매일 같이 붙어다니면서 머리 냄새를 풍기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리고 첫 관계를 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깨끗이 씻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언제 하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머리는 일주일 넘게 안 감고 다니다가 이틀에서 사흘 안 감는 정도로 줄었고, 목욕은 몇 달도 안 할 수 있었지만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하게 됐다. 그러나 내 방의 더러움은 제거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나 할머니가 늘 치워주셨고, 성인이 돼서도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방을 더럽히는 것뿐이었다. 청소하는 능력은 내게 없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며 자취할 당시의 내 방 사진을 현재 남자친구를 포함해 전 남자친구들이 본다면 모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것이다. 나는 1년 뒤 즈음에 회사를 다니며 서울에서 또 자취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나는 청소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또 당근 알바를 채용하면서 돈을 탕진할 순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들이 씻기나 정리정돈 등을 잘 못한다고. 나는 지금까지 씻는 것과 청소하는 것이 싫었다. 아니, 그냥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초등학생 그 어린 나이에도 마음에 병이 있던 걸까. 나는 유치원 때부터 교우 관계가 좋았고 나를 싫어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 앞에서 매우 활달한 성격이고 주도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마음에 병이 있는지의 여부는 사람의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우울증을 겪으면서 다들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속은 곪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랬으니까. 최근 '그것이 알고싶다'에는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방영됐다. 세상에 나보다 더러운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20·30대를 중심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들의 쓰레기 집이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나는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사라졌다. 한 가지 자랑할 게 있다. 나는 오늘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이전 25화 자존감이 낮아서 우울한 이들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