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전형부터 합격하게 해주세요
나는 2022년 7월 초에 직장을 그만둔 후 지금까지 쉬고 있다. 꽤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장애 판정을 받았고, 그 당시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현재도 약을 복용 중이다. 이제는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서류전형에 합격한 후 몇 번의 면접을 본 적이 있다. 그 면접 때마다 항상 받았던 질문. “1년 동안 뭐했어요?”
처음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여 병원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여행을 다니며 쉬었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그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 후에 나는 내가 앓았고, 지금도 극복 중인 우울증에 대해 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면접관들은 귀신 같이 나의 거짓말을 아는 것 같았다. 또 다른 면접에서 1년의 공백기가 왜 있었냐는 질문에 “이전 직장을 다니면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 회사를 그만두었고…… 1년 동안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했습니다.”라고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솔직히, 면접관에게 우울증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 내가 너무 비참하고 가엾어서 조금은 울 뻔했다. 면접관들이 나를 ‘저런…….’하는 눈빛으로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뒷수습은 해야 했기에 그래도 이제는 많이 나아졌으며, 우울증을 극복해 나가면서 스스로 더욱 성장했다 등등의 면접자스러운 말들을 쏟아냈다.
며칠 뒤 문자메시지가 왔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모시지 못하게 돼 매우 안타깝습니다’ 어쩌구 하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면접관들은 우울증인보다는 비(非)우울증인을 선호하겠지. 우울증인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일으킬지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결국 나의 면접 탈락을 모두 우울증 탓으로 미뤄버렸다. 그리고 한동안은 어느 곳에도 서류를 넣지 않았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를 누가 뽑아주겠어 하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면접에서 떨어진 것은 우울증 탓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다른 면접자가 나보다 역량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해 뽑힌 것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면접관들에게 우울증을 극복 중이라고 밝혔고, 그로 인해 더 성장하기도 했다고 했다.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는 발언이었다. 나 혼자 ‘우울증’이라는 틀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 나는 더욱 당당해지기로 했다.
최근 두 개의 회사에 서류를 넣었고, 브런치에 이런 글을 연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렸다.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았다) 나의 비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나니 자존감이 더욱 높아진 기분이었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우울증은 내가 평생 안고 갈 짐이 아니라는 사실도 항상 인지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며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모든 신들에게 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제발 서류 전형에 붙게 해주세요. 면접 때는 제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 면접관들에게 당당하고 현명하게 대답해서 합격하도록 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