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규칙적으로 먹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 약을 ‘불’규칙적으로 복용했다. 먹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자꾸 깜빡깜빡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특히 나는 외출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약을 빼먹고 나가니 제때 챙겨 먹기가 힘들었다. 약을 제때 꼬박꼬박 복용해도 완치가 힘들다던데, 약조차 제대로 먹지 않으니 나아질 마음이 없는 인간이라고 봐도 할 말이 없었다. 약을 제대로 먹지 않으니 그동안 가져왔던 긍정적인 생각들은 무용지물이 됐다. 다시 뒤죽박죽이고 불안하고 우울한 나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는 잠깐 괜찮은 듯 싶었다가도 집에 오면 다시 무기력해졌다. 작은 것에도 쉽게 신경이 예민해졌고, 그것이 스트레스로 쌓이니 불면이 심해졌다. 그렇게 쌓인 피로감은 내 인생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병원에 상담을 받으러 갈 때마다 받는 심리 검사지에는 ‘어느 누가 도와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다’는 문항이 있다. 1점부터 5점까지 ‘매우 아니다’, ‘아니다’, ‘보통이다’, ‘그렇다’, ‘아주 그렇다’ 순인데, 최근 나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5점에 체크했다. 그만큼 나는 매우 비관적인 상태였다.
이전에 우울에서 벗어나는 법이라는 글을 감히 쓴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운동이나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 글을 쓴 장본인인 나조차도 약을 먹지 않으니 운동을 할 힘도, 어떤 것을 할 에너지도 생기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하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하고 장담해놓고 정작 나는 우울에 잠식돼버렸다. 나는 하루하루를 그냥 날리고 싶었다. 눈을 뜨기 싫었다. 눈을 떴을 때 오후 2시이면 빨리 해가 저물길 바랐다. 저녁이 되면 새벽이 되길 바랐다. 새벽이면 잠이 안 오는 와중에 배는 또 고파져서 가족들 몰래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면 새벽에 내가 음식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 생각이지만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도 술을 먹어서 기억력이 자꾸만 감퇴하는 것 같았다.)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살이 찔 것 같은 압박에, 예전처럼 토가 하고 싶어졌다. 나의 상태는 자꾸만 1년 전 처음 우울증을 겪던 상태로 돌아갔다. 운동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누워만 있는 나는 1년 전 퇴사 직후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서 눈물만 흘리던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빼먹었던 약을 다시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내 상태는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은 대가였다.
어느날 남자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나는 그가 나의 연애관, 결혼 계획 등에 대해 물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질문은 요즘 왜 글을 쓰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그간 내가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위에도 주저리 주저리 적었듯 무기력해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내 입으로 직접 요즘 무기력하다는 말을 해본 적은 없었다. 솔직히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었으니까. 특히 6살 연하인 남자친구에게는 든든한 연상으로 보이고 싶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뚜렷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계발도 열심히 하고 있는, 그런 커리어우먼 같은 연상 말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요즘 무기력해서.”
내가 아무리 감추려고 해봐도 남자친구 눈에는 나의 무기력과 우울이 보였던 것 같다. 남자친구는 요즘 내가 예전보다 무기력하고 우울해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단했던 줌바(Zumba)와 글쓰기를 다시 꾸준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나는 최근 한 달간 줌바를 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꾸준히 할 때가 더 활기차보이고 좋아 보였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도 운동이든 글쓰기든 무언가를 열심히 할 때 나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빛나고 멋졌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울증 환자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정답, 불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하더라도 약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된다. 결국 예전 상태 그대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 나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은 대가로 무너진 모래성 같은 상태가 됐다. 우울증이라는 파도에 다시 휩쓸려 힘겹게 쌓아온 모래성이 무너졌다. 하지만 나는 살아지는 한 살아가야 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든든한 방파제를 세워야 한다. 아무리 파도가 쳐도 안전할 수 있는. 나에게 그 방파제는 우울증 약을 비롯해 긍정적인 마인드, 규칙적인 생활 등이다. 앞으로 시련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