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Jul 25. 2024

그럼에도 나는 사랑한다

애정결핍에 남미새일지라도

나는 최근 댓글들을 통해 “애정결핍”,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끼)” 등의 말을 들었다. 답 댓글을 남기고 싶었으나 참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내가 어려서부터 애정결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항상 싸우는 가정에서 자라기도 했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도 부족했다. 항상 나에 대한 단점만 보였고 그것을 가지고 자책을 많이 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과거의 나에 대해 누군가 애정결핍이라고 손가락질한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벗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는 결핍이 많이 충족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연애할 때 스스로 ‘을’을 자처했던 타입이다. 걸핏하면 헤어지자는 소리를 해대서 ‘갑’으로 보였을 수도 있지만, 속으로는 늘 전전긍긍하며 나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기 바빴다. 저번에 보였던 모습 때문에 나에 대한 애정이 식었으면 어떡하지?, 예쁜 여자한테 눈 돌아가서 나를 차면 어떡하지? 등등.  


그래서 나는 방어기제로 이별카드를 항상 먼저 내밀었고, 상대방이 표현하는 만큼만 표현해야 했다. 혹여나 내 마음의 크기가 더 클까 봐, 또는 내 마음이 이만큼이나 큰 걸 들킬까 봐 숨기고 또 숨겨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애정결핍으로 인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자연스레 ‘남미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도 인정한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 나는 남미새였다. 나는 늘 결핍이 큰 만큼 그걸 채워줄 사람이 필요했다. 한 사람과 헤어지면 그 슬픔과 공백이 너무 커서, 그걸 메워줄 사람이 여럿이나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또 언제 남미새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도 완벽하게 결핍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있는 현재로썬 내가 남자에 미친놈인지 안 미친놈인지 알 수가 없지만(나는 한 사람에 빠지면 그 사람만 보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연애를 할 때 나의 태도는 과거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음이 식지 않는 한 함부로 이별을 말하지 않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많은 연애를 통해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내 마음이 다 닳을 때까지 마구 사랑한다. 헤어질 때도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으면 아픔이 배로 크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차였더라도 내가 붙잡아야겠다면 자존심 따위 버린다. 상대방으로부터 모진 말을 듣고 상처 받을 수 있지만 내 마음이 다하는 데까지 하는 편이다. 그래야 미련도, 후회도 안 남는다.

최근 내가 남자친구에게 남긴 메모.

누군가는 왜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연애를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가족 외의 누군가를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애틋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처럼 진귀한 경험은 없다. 나의 경우엔 상대방이 다쳐서 진심으로 내 가슴이 아려올 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때는 정말 내가 대신 다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 내가, 나 자신보다 아끼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마다 신기하다. 이보다 더 귀한 감정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한다. 언젠가는 상처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