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Oct 18. 2024

비혼주의 호소인이 된 이유

한 사람과 잘 결혼할 수 있을까 

인디밴드 커피소년의 곡 중 이런 노래가 있다. ‘장가갈 수 있을까’. 가사는 이렇다.


장가갈 수 있을까 장가갈 수 있을까
올해도 가는데 장가갈 수 있을까
누굴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남들처럼 그렇게 장가갈 수 있을까
내 친구들 하나 둘 씩 떠나가고 
설마했던 그 친구마저 떠난다


이 노래는 내가 대학생 때 통학하며 듣던 노래다. 당시 들으면서 공감은 전혀 되지 않았다. 이제는 가사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나, 시집갈 수 있을까.


나는 비혼주의 호소인이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싸우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누군가와 한평생 함께한다는 것은 살을 부대끼고 부닥치고 치고받고 싸우는 ‘현실’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그리고 주변에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하는 사례도 적었다. 기혼자 선배들은 독재정권 밑에서 계몽운동을 하는 것마냥 ‘freedom(자유)’를 외쳤고, 솔로인 나를 보며 “지금이 좋은 거다”라고 말했다. 오죽하면 죽음과 결혼은 최대한 미루라는 말도 있다. 이런 여러 사례들을 겪다 보니 내 안에는 자연스레 ‘결혼=지옥’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게 됐다. 그나마 유사 비혼주의가 된 이유는 그래도 연애를 할 때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하고 싶다’하는 생각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완벽한 비혼주의는 아니고 비혼주의 유사품(?)이다. 


예전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말거나 식으로 생각했다면, 서른을 넘긴 지금은 마치 기로에 선 것마냥 바로 결정을 내려야 할 것만 같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막상 나이 들어 결혼이 하고 싶어지면 그땐 괜찮은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하루하루 내 자궁은 늙어가고 있기 때문. 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결혼이든 출산이든 결정내리고 진행시켜야 할 것 같다. 


언젠가 한번은 미혼모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를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혼은 하기 싫고 아이는 너무 키우고 싶었다. 내 씨는 세상에 남기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내 몸 하나 건사 못하는데 어떻게 혼자 애를 키울 것인가, 애가 애를 키운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아니 일단 애는 고사하고 결혼부터가 문제다. 나는 다음의 이유로 결혼을 할 수 없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1. 경제관념 없음 2. 정리정돈을 하지 못함 3. 한 남자와 살아갈 자신이 없음

나는 이전에도 무수히 말해왔듯 경제관념이 0에 수렴한다. 월급을 받았을 때엔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생각없이 돈을 쓰고, 쥐콩만한 알바비를 받아도 당장에 술값으로 탕진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내 미래의 남편될 사람에게 돈을 모조리 맡기지 않고서야 가정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전에 경제관념 없는 여자를 누가 좋아하기나 할까 싶었다. 


또한 나는 정리정돈 능력도 전혀 없다. 입었던 옷은 빨래통에 넣고 외투는 다시 옷장에 걸어놓으면 되는데, 거기까지 갈 힘이 늘 없다고나 할까. ADHD가 아닌데도 나는 늘 옷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을 까먹는다. 그래놓고 엄마가 “옷 또 저렇게 두지!” 호통치시면, “(빨래통에) 갖다 놓으려고 했어!”라는 말로 되받아친다. 사실은 잊고 있었는데. 고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는 것을 보면 완벽히 고쳐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내가 결혼을 한다면? 미래의 남편은 금쪽이 하나를 키우는 기분일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한 남자와 평생을 살아갈 자신이 도무지 없다는 것이다. 연예인 이효리는 말했다. 자신이 바람 피울까 봐 평생 한 명의 남자와 살 자신이 없었다고. 나도 깊이 공감했다. MBTI 이론에 따르면(물론 내가 MBTI 신봉자는 아니지만) ESTP는 어떤 것에 쉽게 질려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믿기 싫지만 나는 정말 그런 성격이다. 단조로운 것을 싫어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지겨워 한다. 남자친구도 지금껏 여러 번 바뀌었는데 결혼은 남은 평생을 한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남자에게 한눈 팔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부부들을 대단히 존경한다.


서른 살에 아직도 금쪽이 인생을 살고 있는 나를 사랑해줄 남자가 있을까? 게다가 내가 결혼이 하고 싶어질 때쯤 진정으로 괜찮은 남자가 있을까? 이런 문제들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비혼주의 유사품이다. 아직도 결혼은 나와 먼 얘기인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 몇몇 친구들의 결혼식 디데이가 가까워오고 있다. 아, 결혼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낸 수많은 축의금들을 못 돌려받는 셈이 되기도 한다. 뭐 어쩌겠는가. 다들 결혼한다고 나도 따라서 준비도 안 된 결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혼은 유행 같은 것이 아니니까. 조급해 않고 내 인생 템포에 맞춰 내가 좋고 상대도 좋을때 결혼할 것이다. 그게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뭐 어떻겠는가. 

이전 03화 또, 우울에 잠식당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