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을 믿기 때문에 되도록 부정적인 표현을 입 밖으로 뱉으려 하지 않는다. 남편이 뭔가 안 좋은 얘기를 하면 "퉤 퉤 퉤!"를 시키며 다시 집어삼키도록 종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11월 초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속담이 있었으니 바로 '첫 끗발이 개끗발'이었다. 휴일이 많았던 10월이 지나고 11월이 시작되면서 매출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지난달 매출에 비해 20%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분명 뿌듯하고 좋은 일이지만 겨우 이 정도에 들뜨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 성과를 11월 말까지 이어나가지 못했을 경우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 기대치를 낮추게 하는 이 문구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것만은 계속해서 막고 있었는데 이것이 갑툭튀 하게 된 순간이 있었으니...
S: "요즘 바빴어?"
Y: "응, 11월 초에는 조금 바빴어."
S: "잘 됐네."
Y: "첫 끗발이 개끗발...
.... 이 되면 안 되는데.."
깊은 마음을 나누는 언니를 집에 초대해서 한참을 얘기했고 배웅을 하는 길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차..! 내뱉고 말았네.'
소심하게 "안 되는데.."를 붙이긴 했지만 왜 결국 이 말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언니는 나를 100% 나 자신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도 숨기고 싶지 않게 만드는. 또한 왜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중반 들어서 다시 하락하고 있는 매출에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위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실패를 미리 그리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의 부작용은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를 만족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응,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밴드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에 내 노래를 들은 밴드 멤버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처음엔 매력적이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매력이 떨어지네."라고 했던 말. 벌써 15년도 더 된 그 말은 아직까지도 가슴 한편에 남아서 노래의 후반부로 갈 때마다 흔들리는 집중력을 끝까지 다잡는 힘이 되어 준다. 밴드를 시작한 초반에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으니까.
오늘은 어제 언니와의 대화에서 '시작을 잘하고, 그것을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뭐가 돼도 된다'는 말이 힘이 된다. 꾸준하다는 것은 남들은 모르는 지난한 시기를 애써 견뎌온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수식어다. 그러니 꾸준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들 하는 것 아니겠는가.
스스로의 꾸준함을 의심하면서 실패를 미리 예상했던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그동안의기록을들춰보는것이었다. 출근길에 나의 유튜브 채널에 머물러그간 올렸던 노래들을 들었다. 평소에는 녹화해서 영상을 올리고 나면 녹음과 편집에 지쳐 잘 보지 않는데 오늘은 왠지 지난 기록 속의 나를 보고 싶었다. 그 속에는 하나의 노래를 완곡하기 위해서 음정과 끝 음에 신경 쓰며 노래를 하는 내가 있었다.끝까지 처음의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하는 내가 보였다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우울할 때도 꾸준히 기록한 발자취가 나를든든히 받쳐 주고 있다. 그것은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멈춰 있는 것처럼보이거나 내리막길을 걷는 듯이 느껴지는시기에도주어진 일에 진심을 다한다면누구나 그 계단을 밟고 조금씩 성장한다. 그렇기에 옷을 하나 포장하는 것도 대충 하지 않아야 한다. 실밥이 보이면 다 포장한 옷을 다시 풀어 그것을 떼어내고, 아무리 바빠도 지름길 대신 정도를 걸으려 한다. 해내고 싶은 일에 장인 정신을 다하는 것은 실패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정말이지 아무 쓸 거리도 생각나지 않았던 아침을 뒤로하고 사무실에 남아 이 글을 쓴다. 이것은 브런치에 담근 나의 첫 끗발이 개끗발이 되지 않게 하는 시도다. 우연히 펼쳐 본 내 인생 해답책은 고맙게도 꽤나 그럴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