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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아래 Oct 12. 2024

엄마의 화장

아픈 내가 아픈 너에게



딸아이가 울며 옆 세면대에서 연신 세수를 하는 동안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한다.


어차피 학교는 가야 하고, 등교시간은 다가오고 있으니 언제까지 토닥이며 달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4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점점 더 엄마 얼굴이 되어 가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꺼진 눈덩이와 뺨을 보니 영락없는 엄마 얼굴이다.


어릴 적 엄마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하는 모습을 자주 구경하곤 했다.


산을 세워 진하게 눈썹을 그리고, 눈을 아래로 내려뜬 채 눈두덩이에 황금색 쉐도우를 바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평소 내가 하는 단출한 화장에 비하면 엄마의 것은 나름 복잡했는데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정면과 좌우를 거울로 확인하는 모습이 특히 좋았다.


엄마는 아이가 셋이었고, 성마르고 불같은 남편(매일 술을 마셔야 하는) 종일 한 가게에서 같이 일(뒤치다꺼리)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침 화장대 앞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엄마'를 볼 수 있었고, 거울 속에서 눈썹, 눈, 뺨, 입술로 이어지는 엄마의 시선을 보고 있노라면 '괜찮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괜찮은가 하면 첫째 엄마가 괜찮았고, 그래서 우리가 괜찮을 거라는 안도감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매일같이 힘든 밤을 보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화장하는 엄마를 확인하는 일은 내게 곧 오늘 하루치의 안녕을 의미했다.


미래는 까마득히 멀었고, 내일마저도 늘 불확실했다.


아니 내일의 고통은 거의 확실했으므로 매일 오늘 하루씩 살았다.


내일은 죽을지도 몰라. 아니 오늘 밤에 죽을지도 몰라.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가능성은 엄마였고, 다음은 아빠, 그리고 그다음은 우리 중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불행히도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 함께 갇혀 있었고,


그곳에는 분노와 끈적끈적한 슬픔이 가득했으므로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겨울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한 여름의 무성한 생명력을 상상할 수 없듯이, 계절은 결국 지날 테지만 그때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죽음이 무서웠지만,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하루치의 안녕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차라리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죽으면 더 이상 무섭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엄마가 화장하는 걸 보면 조금 안심이 됐다.


아무래도 딸과 엄마는 정서적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안도감.



그래서 나는 괜찮아야만 한다.


하필 나랑 똑닮은 딸을 낳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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