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알고리즘

<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17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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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 속,

알고리즘이 골라 준 완벽한 상대가 있다.

그러나 마음은 클릭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

과연 사랑도

데이터로 완벽히 예측될 수 있을까?



그는 스마트폰 화면이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상대, 클릭 한 번이면 연결되는 이상형. 몇 년 동안 꿈꿔온 모습과 가장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은 멈췄다. “정말 사랑이 이렇게 찾아오는 걸까?”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의 사람들 모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찾고 있었다.


과연 사랑은 알고리즘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는 한때 본 영화 <Her>가 떠올랐다.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 따뜻하고 매혹적인 목소리였지만 결국 그 관계는 허상일 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사랑은 코드와 데이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많은 이들이 알고리즘으로 사랑을 찾고 있었다. 넷플릭스 다큐 <매치 메이킹 실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애의 성공 사례들을 보여준다. 심지어 20년 넘게 결혼한 커플 중 상당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슷한 성향을 보인 사람과 만나 결혼했다는 연구도 있었다. 그렇다면 사랑이 감정보다 확률과 통계로 움직이는 걸까?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학 시절 첫사랑이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 그녀가 남긴 연필 자국과 같은 문장을 좋아했던 그 시절. 그 만남에는 알고리즘도, 추천 시스템도 없었다. 단순한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 속에서 사랑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유학길에 올랐고, 연락은 서서히 끊겼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만약 서로의 성향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최적의 소통법을 찾았다면, 사랑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그는 다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추천’을 눌러야 할까? 아니면 거리로 나가서 새로운 인연을 기다려야 할까?


그가 망설이는 순간, 맞은편 카페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랑은 알고리즘을 이길 수 있을까?” 그는 그 질문에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직접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따뜻한 커피 향이 그를 감쌌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그녀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낯설지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미소 지으며 답했다.

“‘사랑의 역사’예요. 사랑이 정말로 시대와 문화를 초월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요.”

“그렇다면, 알고리즘이 우리의 사랑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사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대화 방식까지 예측하잖아요. 하지만 사랑은 그 예측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예측할 수 없는 우연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이랄까요.”

그녀가 책을 덮으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고리즘이 만들어주는 사랑이 더 완벽할 수도 있겠죠. 우연보다 덜 위험하고, 덜 상처받을 테니까요.”


그들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과 사랑, 우연과 운명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들. 그는 오랜만에 화면 대신 눈을 마주 보며 누군가와 진짜 소통한다는 느낌에 새로웠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대화 정말 즐거웠어요. 이제 가봐야겠네요.”

그는 아쉬움에 서둘러 물었다.

“혹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알고리즘에 맡겨볼까요? 아니면 우리가 직접 선택할까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엔 우리가 직접 선택하는 걸로 하죠.”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건넸다. 그는 그 순간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알고리즘이 예측하지 못한, 그 ‘우연’이야말로 사랑이 시작되는 진짜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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