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유

<사랑은 길고양이처럼> 18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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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아니면 얽매이게 할까?

길고양이처럼 다가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감정.

진짜 사랑은 붙잡으려 하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면 자유를 잃게 된다는 말이 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혼자 결정하던 사람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되고, 아무 때나 떠나던 여행 앞에 망설임이 생기며,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헤아리게 된다. 그렇게 사랑은 우리를 묶어두는 속박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오히려 더 넓고 깊은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삶의 중심에 그 사람이 자리를 잡는다. 우리가 자유라고 여겨온 많은 것들이 그 사랑 앞에서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어떤 이에게는 희생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자발적인 기쁨이 되기도 한다.


문학과 영화 속 사랑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에서 안나는 사랑을 위해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가정을 떠난다. 그 선택은 결국 비극으로 이어지지만, 그녀는 적어도 단 한 번은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선택했다. 반면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제시와 셀린느가 단 하룻밤 동안 모든 규칙과 경계를 내려놓고 서로에게 몰입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낯선 도시에서의 일탈이고, 진정한 자기 해방의 순간이다.


사랑이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존중’이라는 토대가 필요하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태도는 결국 관계를 질식시킨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서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감정이다. 상대의 꿈을 지지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인정하며,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사랑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에서 엘리오가 올리버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는 장면은, 사랑이 어떻게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감정은 단순히 달콤한 감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억누르던 틀을 깨고, 낯설지만 진짜인 자아를 만나게 해주는 통로다.


물론 모든 사랑이 이런 해방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사랑은 때때로 불균형하다. 상대를 과도하게 통제하거나, 지나친 의존에 빠질 때 사랑은 자유를 억압하는 감정이 되기도 한다. SNS를 통해 연인의 일상을 확인하고, 연락이 없으면 불안해하며, 사소한 말과 행동을 해석하고 또 해석하는 반복. 그 모든 집착은 결국 자유를 빼앗고 사랑을 지치게 만든다.


사랑과 자유가 충돌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균형이다.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되, 완전히 침범하지 않는 거리. 함께 시간을 보내되,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의 미아와 제바스티안은 그런 균형을 찾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각자의 꿈을 향한 자유를 더 이상 희생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선택은 이별이었지만, 동시에 사랑이 다른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 안에서 어떤 자유를 찾아야 할까? 그것은 타인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자유, 상대에게 기대되면서도 홀로 설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머물기로 선택하는 결심에서 오는 자유다. 사랑은 반드시 구속의 사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문이 될 수 있다.


홍콩 영화 『화양연화』의 장만옥과 양조위는 사랑하지만, 사회적 도덕과 책임감이라는 외부 규범 속에서 끝내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절제된 사랑은 더 깊고 오래도록 남는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사랑이 자유롭지 못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침묵하고, 견디며, 기억되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 안에도 그들만의 조용한 자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은 길고양이와 닮았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마음을 흔들고, 억지로 붙잡으려 하면 어느새 멀리 도망쳐버린다. 하지만 조용히 기다려주고, 다가올 때 온기를 나눠준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곁에 머물기도 한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속박될 수도,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사랑을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선택하느냐다.


사랑은 얽매임이 아니라 함께 날아오르는 일이다. 그 자유는 혼자일 때보다 더 용기 있고, 더 의미 있으며,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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