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16화
사랑은 마음의 일이라 믿었지만,
혹시 그것이
혈관 속을 흐르는 것이라면.
감정이라 부르던 모든 떨림이
이미 나의 세포에 각인되어 있던 것이라면.
어느 날 아침, 무심히 넘기던 신문에서 한 문장이 눈에 박혔다. 인간의 사랑과 애착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우리는 사랑을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사랑마저도 유전자의 각본에 따라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생물학적 과정이라고 주장해 왔다. 도파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사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며, 유대감 형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기가 태어나 엄마 품에 안길 때 분비되는 것도 이 호르몬이며, 연인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친밀함을 느낄 때도 활성화된다.
그러나 단순히 호르몬 작용만으로 사랑을 설명할 수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특정 유전자가 이러한 호르몬 수용체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일부 과학자들은 바소프레신 수용체 유전자(AVPR1a)가 연인의 충실도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사람들은 유전자적 요인 때문에 더 헌신적인 사랑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전자적 요인으로 인해 더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사랑을 조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2019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쌍둥이 연구를 통해 사랑에 대한 성향이 어느 정도 유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일란성 쌍둥이들은 이란성 쌍둥이보다 연애 패턴이 유사했다. 이는 사랑에 빠지는 경향조차 유전적 요소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이 오로지 유전자로 결정된다면, 사랑은 너무 단순한 공식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연인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다. 하지만 지운 기억 위에도 여전히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듯이, 유전자가 결정짓지 못하는 사랑의 영역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사랑이 유전적으로 조종된다면,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유전자가 사랑의 기본 설계를 만들었을지라도, 우리는 그 위에서 수많은 경험과 감정을 쌓아간다. 환경과 경험이 유전자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랑은 단순한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극복하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진화하는 감정이다.
또한, 유전자가 사랑의 가능성을 결정할지는 몰라도, 그 사랑이 유지될지는 우리의 행동과 선택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관계를 보고 자란 아이는 미래의 연애 관계에서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고민하고, 의식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유전자는 출발점일 뿐, 사랑의 형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유전자가 조종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고전 문학 속에서나, 현대 영화 속에서도 사랑은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으로 묘사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사람은 가족이라는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어 사랑했고,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단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이 평생을 남기는 사랑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랑이 단순한 유전자 조합 이상의 것임을 보여준다.
유전자는 사랑을 시작하는 작은 불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어떻게 피어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우리의 경험과 선택, 그리고 운명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우리를 조종한다고 해도, 사랑을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다. 사랑이란, 본능과 의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미스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