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못 하면 나중에 네가 고생해. 남에게 시키게 되더라도 할 줄은 알아야지. 그가 집안 일 이것저것 시킬 때마다 너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하는 저 말을 나는 물론 믿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어차피 나중에 내 몫으로 떨어질 일이라면 그때부터는 주욱 내 일이 될 터인데 그걸 왜 굳이 미리? 라고 반문하며 속으로 비죽대곤 했다. 그의 예언은 또 틀려서 어릴 때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았어도 그게 내 살림을 사는 데 지금까지도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그때그때 되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거니까.
며칠 전 우연히 본 티비 예능프로그램에서 혼자 사는 남자 연예인 집을 세 명의 여성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세 사람을 대접하며 몇 가지 음식을 하고서 완전히 지쳐버리는 남자 연예인을 보면서 함께 보는 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손님을 치른다는 게 저런 건데, 엄마는 백일 날 시집 손님 열 댓 명을 혼자 치렀잖아. 내려놓기만 하면 우는 너를 내내 업고서 말이야.”
벌써 몇 차례 했던 얘기라 딸도 아는 일이지만 성인 여성 세 명을 응대하느라 진땀을 내는 건장한 30대 남성을 보니 그 때 그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새삼스러워서.
결혼하자마자 지방에서 살기도 했지만 결혼부터 독립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딸을 낳고 백일 상을 차리는 건 당연 나 혼자 할 일이라 생각했다. 상견례 후 결혼 준비에도 그 당시 운영하고 있던 옷가게 일을 해야 한다며 알아서 하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결혼 후 내가 할 일을 그에게 도와달라 해야겠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 무사히 백일을 보낸 것에 대해 나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에 시부모에 남편 형제들과 그 가족, 시외삼촌과 시이모 가족까지 몽땅 방 두 개짜리 아파트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고 인터넷을 참조하여 대략 어찌 하는 건지 아는 몇 가지 요리와 찜닭이니 궁중 떡볶이니 하는, 난생 처음 하는 음식의 메뉴를 짜고 장을 보고 만들어서 손님을 잘 치렀다.
물론 처음 하는 대량의 음식이라 대체로 맛이 싱거웠는데 그 맛에 대해 굳이 싱글거리며 놀리듯 말했던 시외삼촌은 그 날 이후 내 맘 속에서 아웃당한 건 아직까지 나만 아는 일이다. 내가 정한 일이지만, 어릴 때부터 유독 나만이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란 반응을 듣고 자란 때문도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보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더 잘한다고 집안에서 공인받은 동생은 부모 집 근처에서 새 살림을 차렸는데, 그의 도움을 착실히 받아 시집 쪽 손님을 치렀다는 것을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