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또래 어른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도 남의 이목을 무척 의식하는 사람이었다. 집안에서 큰소리 나는 것을 매우 싫어했는데 무엇보다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웃들이 알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내내 씨족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 없이 자라는 티를 내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을 해보기도 하지만 살아오면서 만난 많은 이들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는 말을 종종 하는 것을 보며 그만의 특성은 아니구나 하기도 했다. 다만 어느 날 그가 보여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은 좀 유별나다 싶어 두고두고 생각이 나곤 한다.
그는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전에도 수차례 병원 신세를 지곤 했다. 그의 말로 '대수술'이었다는 원인 모를 열로 인한 개복 수술 외에도 개복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50대 중반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지병 때문에 아부지랑 번갈아가며 일 년에 두어 차례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곤 해서 그에게 병원은 낯설거나 유별난 장소가 아니었다.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전구를 갈려다가 떨어져서 어깨부터 팔꿈치 사이의 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수술을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였다. 나이 들어 뼈가 부러지면 회복이 잘 안 되지 싶어 걱정스럽기는 했고 수술 자국이 남기는 할 테지만 수술 자체는 잘 되었다 하니 다행이다 하고 있는데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그가 갑자기 한숨을 쉬며 눈물 바람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이 나이에 남들은 생전 안 다치는 팔이나 부러지고 남 보기 챙피하다"
는 것이었어서.
본인이 많이 아파봐서 아픈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진 않은 듯 싶은데 부상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있었던가 짚어지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수술 마치고 얼마 안 돼 통증이 있을 텐데 그보다도 더 크게 와 닿는 게 남 보기 창피하다는 것이라니 참으로 엄마답네 하면서도 나와는 성향이 정말 다르구나 싶기도 했다.
누군가가 좀 심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얘기를 할 때면 저 날 그가 창피해하는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 다친 것만으로도 아프고 힘든데 남들이 어떻게 볼지가 더 걱정이 돼? 그거 병이야, 창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