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고 5개월 즈음이었을 때다. 태아감별 후 여아를 낙태하는 이들이 많아 사회 문제가 될 정도여서 태아감별을 하지 못하도록 하던 시기였다. 세태와는 달리 나는 아이의 성별을 정할 수 있다면 당연 딸을 낳아 보란 듯이 키워보겠단 마음이 강했다.
임신 상태일지 모른다는 짐작을 했을 때가 임신 4주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아직은 낳을지 말지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기라 여겼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도록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내린 결론은 한 생명이 이미 그 모체에 자리를 잡았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였겠지, 세상에 나기도 전에 사라지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생각을 하는 순간, 10대부터 그때까지 내내 부모에게 가졌던 원망 섞인 물음이었던, 묻지도 않고 낳아서 이렇게밖에 키우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린 셈이 되었다. 아, 내가 태어난 것이 부모 일방의 결정만은 아닌 것이로구나.
정작 병원에 가서 임신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두 주가 지나서였다. 이후 임신 기간 내내 내 몸을 보살피며 뱃속의 아이를 키우고 출산하여 양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묻지도 않았는데 임신 5개월 즈음에 의사가 태아가 아들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이어서.
순간 느꼈던 가슴이 추욱 내려앉는 실망감이란. 친정에서 가까운 병원이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친정으로 가 가장 먼저 그에게 아들이라더라고 말했을 때 그의 그 화안하게 반가워하던 표정이란! 나에게 잘 했다고 했던가. 가장 좋은 성적표를 내밀었을 때도 그가 내게 그런 표정으로 그렇게 잘 했다고 말하진 않았어서.
그의 그 반가움을 보면서 서운함과 함께 아이 성별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었다. 실망은 했으나 태어나려고 생겨난 아이인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 아들임을 받아들여야겠다 생각하며 적응하는 중에 막달이 다가왔다. 의사는 또다시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아이 성별을 말해주었느냐고 묻더니 딸이네요, 했다.
아니, 이 사람이! 누굴 놀리나 싶으면서도 여러 달 전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쑤욱 올라와 가득 들어차며 '딸!'이란 말이 그렇게 기분 좋게 들릴 수가 없었다. 사실은 딸이더란 소식을 또 가장 먼저 그에게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당신의 첫 손녀 딸을 나름 귀애했고 그래서 딸도 엄마의 엄마에 대해 좋은 감정을 내내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