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7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남편도 아픈데 나도 아프면 어쩌나!
속으로 걱정 가득 품고 산다.
2차 검진을 위해 오늘은 담당 교수님을 만나러 간다.
남편도 병원 가는 날이다.
딸을 남편 보호자로 딸려 보냈다. 나는 혼자 가도 되어서.
병원 가는 일로 생각이 많아선지 일찍 잠이 깨진다.
늙어서 잠이라도 푹 자야 된다고 했는데
6시에 사랑이와 산책 겸 황토 맨발 걷기를 하고 오면 오전 7시가 된다.
보통 사람들은 다 자고 있을 시간이다.
소심한 나는 사랑이 떼어 놓고 갈 궁리를 시작한다.
그냥 두고 가면 짖어도 너무 짖어댄다.
로봇청소기 센서에 2시간 동안 130번을 짓었다고 나와 있었다.
아파트에 살려면 절충이 필요한 일이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기저귀를 채우고 입마개를 해서 뒷 베란다에 둘까.
(입마개라고 하면 강아지를 학대 비슷한 행위를 할까 싶지만
사료도 먹을 수 있고 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소리도 낼 수 있다. 단지, 너무 우렁찬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같이 살아야 하니까.)
입마개만 해서 큰방, 화장실, 부엌, 뒷 베란다까지 쓰게 할까,
아니면 평소대로 기저귀 채우고, 입마개 해서 큰방에 둘까.
궁리만 하다가 병원 갈 시간이 임박해졌다.
갑자기 새로운 방법이 생각났다.
아들 방에 있는 매트를 세워서 냉장고와 큰방 모서리를 막았다.
기저귀를 채우고 입마개를 해서 널찍하게 있게 했다.
현관을 나와서 문에 귀를 대고 들었다.
“월월”
입을 막아도 크게 소리가 들렸다.
다시 문을 열었더니
사랑이가 어떻게 나왔는지 현관 앞에 있다.
등에 식은땀이 올라온다.
“큰일 날 뻔했네.”
무의식적으로 문을 열었더니
만사 불요 튼튼이라고
사랑이를 안아다 큰방에 넣었다.
급하게 에어컨을 무풍으로 해놓고 문을 닫았다.
강아지도 눈치가 좀 있으면 좋을 텐데.
나만 자꾸 악역을 맡게 된다.
빨강 광역버스를 탔다.
버스 안이 온통 커튼으로 꽁꽁 닫혀 있었다.
“아니, 이거 무슨 지하철인 줄 아나? 바깥 구경도 못 하게.”
나는 괜히 속으로 툴툴거렸다.
답답해서 커튼을 슬쩍 젖히고 창밖을 내다봤다.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려는 건데,
괜히 선생님 몰래 도시락 뚜껑 열어보는 학생처럼 조심스러웠다.
조금 지나니 길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마산에서는 굳이 창밖을 안 봐도 다 알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내비게이션 없는 초행길 여행자 꼴이다.
마산 시내버스는 차창 밖 풍경이 늘 친구 같았다.
동네 슈퍼, 문방구, 단골 떡볶이집이 줄줄이 반겨주며,
창문을 안 봐도 직감적인 소리로 어디쯤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광역버스는 영 낯설다.
창밖 풍경은 낯선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 세트 같고,
나는 엑스트라처럼 자꾸만 고개를 빼꼼 내밀어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모르는 길을 간다는 건 묘한 설렘이 있다.
언젠가 이 길도 내 발걸음에 익어, 눈 감고도 알 수 있게 될까.
아니면 끝내 낯섦으로만 남아, 늘 창밖을 기웃거리게 만들까.
병원은 또 붐볐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인지.
병원 안은 환자와 보호자가 뒤섞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기 번호를 받고도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겨우 진료를 받고 나니 엑스레이를 찍으라 하고,
내일은 또 CT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큰 병에 걸린 건 아닌가 하는 ‘중병 히스테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지.
그새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평정심을 되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마음은 다시 흔들렸다.
기다림 속에서 쌓여 가는 피로와 두려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삶의 한 장면일 터.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받아들여야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자리지만,
결국 끝까지 나를 지켜줄 사람도,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힘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