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체험학습. 침묵의 대화. 우정.

by 논스키

선생님이 된 후로 가장 신경쓰는 것 중의 하나가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와 같은 날들이다. 다행이 발렌타인데이는 요즘 조금 덜 신경쓰인다. 봄방학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발렌타인데이도 신경쓰였다. 이유는...소외받는 아이들때문이다.


한 학급에 1-2명 정도는 친구가 없어서 이런 날들에 소외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면...맘이 아리다.


몇 년 전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에도 소외받는 아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몇 가지 조건과 장치를 걸어둔다.

버스타고 갈 때 앉는 자리를 게임으로 정하고, 현장체험학습지에서 이동할 때 모둠을 정할 때에는 반드시 3명이상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어쩌고 저쩌고...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누군가가 같은 모둠을 하자고 요청하면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오래도록 설명했다.

수학여행지 활동 모둠을 만들 순서가 되었다.

역시나 동우가 모둠에 끼지 못한다. 동우는 언제나 조용하고...말이 없고...눈빛도 살짝 슬퍼보이는 아이이다. 세월이 지나 가정방문도 없어지고...학부모 상담주간도 없어져서...큰 사건 사고가 터지거나 학부모 공개수업이 아닌 이상 학부모와 만날 일도 잘 없으니...그 아이의 내력과 문제는 오로지 학교에서의 관찰과 대화로 이루어진다. 동우는 미스터리에 쌓인 학생이다.

아무튼 동우는 모둠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때는 학급에 센스있고 믿음직한 아이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최후의 방법이다.

수현이를 불렀다. 수현이에게 동우가 모둠이 없다. 그러니 네가 속한 모둠에 동우가 속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였다. 수현이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경주로 현장체험학습을 간다. 석굴암에 도착하여 현장체험학습 일정을 시작하였다. 불국사로 이동하여 경주식 불고기로 점심식사를 하고 불국사를 관람한 후 버스를 타고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고 학교로 복귀하는 일정이다.

동우와 수현이는 같이 다닐 뿐 별 대화를 하지 않는다. 수현이는 모둠에 다른 친구들하고는 시끌벅적 이야기하고 장난도 치지만 동우와는 그저 같이 앉고 걸어 다닐 뿐이다.

'수현이 녀석이 억지로 떠 맡아서 적극적이지 않구나...동우가 실망하면 어쩌지? 낭패다'

현장체험학습이 끝나고 다음 날이 되어 의례히 현장체험학습 보고서와 소감문을 쓴다.


동우의 소감문

[수현이와 친구가 되었다. 함께 다보탑에서 사진도 찍고..................................이하 생략...............즐!거!웠!다.]

이건 뭔가? 그냥 다니기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경쓰여서 틈틈이 관찰했지만...별 것 없었다.

하교하는 길에 수현이를 불렀다.

"어제 동우랑 경주에서 뭐했어?"

"놀았는데요?"

"뭐하고?"

"그냥....이것 저것...동우는 별 말이 없어서 그냥 옆에 있었는데요. 이것 저것 말하고 뭐라고 하면....귀찮아 할 것 같아서...그냥 같이 다녔는데요. 밥 같이 먹고...걷고...사진찍고...가끔 이야기하고...긴 장난감 칼 기념품 사서 좀 찌르고...."


우정과 인간관계에 대한 틀을 깨는 장면이었다.

꼭 무언가 특별해야만 즐겁고

꼭 대단한 경험을 공유하고 활기차야만 친구관계이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이다....라는 편견이 사라졌다.


수현이는 동우에게 맞춰 준 것이다.

동우에게 가장 적절한 배려를 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것을 부담스럽다거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우리도 같을 것이다. 작위적이고 억지스런 친절과 행동은 오히려 나와 상대방에게 부담으로 다가갈 것이다.

때로는 침묵이. 그냥 옆에 있는 것 그 자체가 가장 따뜻하고 활기찬 대화이며 행동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은 관계를 갖고 유지하는 내면의 자연스러운 배려가 서로 필요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8화빵과 육상부 그리고 어린이의 인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