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육상부 그리고 어린이의 인내

by 논스키

23년 전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려고 할 때 첫 발령을 받았다. 새학년 새학기 3월 발령이 아닌 7월 1일자 중간발령이었다.

교육청의 연락을 받고, 임명장을 받고 곧장 백화점으로 가서 양복 한 벌을 사입었다.

첫 출근을 했다.

주변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신규교사라고.... 신기하다는 듯이 에워싸고는 무어라 무어라 떠들었다.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허허허 웃으며 "예, 예" 대답만 했다.

몇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사이 퇴근시간이 되었다. '퇴근해도 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체육부장님께서 앞 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이선생님. 전임선생님께서 육상부 훈련을 지도하셔서...이제 선생님이 지도하셔야 하는데...내일 아침 8시에 운동장에 가보면 아이들이 모여있을거에요. 데리고 훈련 시켜보세요."


'읭? 육상부? 훈련?' 이게 무슨 소린가? 뭘 알아야 훈련을 하지. 내일 당장?


"그리고 오늘 첫 날이니까 회식 한 판 합시다. 자! 짐 챙겨서 내려오세요.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일 아침 8시에 훈련이라면서?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 걸리는데? 오늘 회식? 그래도 좋아ㅋㅋㅋ'


고기 굽고 먹고. 한 잔 마시고 한 잔 드리고. 신나게. 늦~~~~~~게까지 즐기다가 택시에 실려서 집에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30분만에 씻는 둥 마는 둥. 쓰린 속으로 밥도 한 숟갈 먹지도 못하고...엄마가 한심하다는 듯이 던져준 동치미 한 사발 들이키고는 출근했다. 육상부 지도해야 하니까.


가까스로 8시에 도착하니 육상부 아이들이 아니라 육상부 아이 한 명이 운동장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처음 만난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어니?

"김성한입니다."

"몇 학년이니?"

"4학년입니다."

똘망똘망하게 생긴 남자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분명히 육상부 아이들이었는데....왜 하나밖에 없지?

"원래 늦게 와요."

"넌?"

"전 일찍 와요!"

몸이 너무 힘들다. 어제 먹은 술과 고기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한다.

"다른 아이들 다 오면 시작할까?" 나도 좀 쉬게....

"그럼 10분도 연습 못해요. 30분에는 교실에 가야되요."

아....꼬장꼬장한....어린....

"그럼 시작하자. 운동장 한 바퀴 돌고 와"

아무것도 모르지만...내가 학교다닐 때 경험으로 일단 질러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도서관에가서 육상부 지도법이나 뒤적여보는건데...술독에 빠져서는...

운동장을 한 바퀴 뛰고, 준비체조를 하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니 2명 더 나왔다. 3명이 전부였다. 다른 아이들은 잘 오지도 않는단다.


20여년전에는 교육장기 육상대회가 있었다. 학교별 대항경기였는데 종목별로 점수가 있어서 종목별 등위를 합산하여 학교별 점수가 산출되었다. 그럼 자연스럽게 학교 등위도 같이 정해져서 상을 주고 받았다. 성적이 좋으면 학교 회식! 나쁘면...눈치밥이었다.

숙취가 풀릴 때 쯤인 오후에야 알게된 사실이었다.

이런 부담스런 일을 발령 1일차 교사에게 떠맏기다니....

품의를 올려서 간식도 준비해야 한단다. 육상부 아이들에게 훈련 후 간식을 주려면. 품의가 뭔지도 모르겠고. 안다고 해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오늘은 일단 그냥 간다.


학교 수업이 마친 후 오후 훈련이 시작되었다.

또 3명 정도 왔으려니.....어? 이번에는 많다. 수업마치고 여유가 있는가? 왜 많지?

수업시간 중 급히 마련한 몇가지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20-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학생 한 명이 이야기 한다.

"쌤. 저 학원가야되요."

"그래? 훈련을 좀 더해야되는데..."

"간식주세요"

"어? 간식? 선생님이 오늘은 준비 못했단다. 어제 학교에 첨 와서...내일은 꼭 준비해 놓을게."

"아...." 그리고는 그냥 가버린다. 그렇게 첫 날 훈련은 끝이 났다.


다음 날 아침이다.

오늘도 성한이 혼자이다.

"성한이 열심히 나오네! 좋다"

"선생님이 간식줄테니까 꼬박꼬박 나오라고 하셨어요"

"누가"

"남00선생님이요"

체육부장님이다.

"약속 지킬려고 나오는거야?"

"네! 할머니도 간식 먹으니까 아침에 꼭꼭 나가서 훈련하고, 대회나가서 상도 타오라고 했어요"

"할머니?"

"네! 전 엄마 없어요."

갑자기 훅 들어온 가정상황이다. 경험도 말재주도 없는 신규교사였던 난 급히...어설프게 말을 돌린다.

"아플 때는 안나와도 돼"

"안되요. 할머니가 아파도 나가라했어요. 공짜 먹으면 안된다구요"


50이 된 이 나이에도 성한이와의 대화를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말과 선생님과의 약속을 꼭 지키는 우직함.

4학년 어린아이가 공짜를 바라면 안된다고. 아파도 내가 해야 할 책임은 다 해야한다고. 말하던 그 눈.

성한이는 약속을 지켰다.

여름방학 때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특별 훈련에 참가하였다.

9월에도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여 10월 교육장기 타기 육상대회에서 4학년 80m와 멀리뛰기, 5-6학년 아이들과 함께 나간 계주에서 1위를 차지하여 학교에 교육장기 타기 육상대회 2위 깃발을 안겨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성한이를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 나무 그늘에 혼자 서있게 만든 것은 단순한 빵 한쪼가리가 아니었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어른이의 믿음직함.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굳은 결심.

그리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사먹기 힘들지만....내가 노력하면 정정당당하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빵.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약속한 좋은 성적을 받아오려는 목표의식이었다.

성한이는 그 뒤로도 졸업할 때까지 육상부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체육중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다.

그는 마지막 교육장기 대회가 끝나고도 아침 훈련에 늘 참가하였다. 빵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책임감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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