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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r 31. 2024

몸에 해가 되기도 득이 되기도 하는 '커피'

나는 커피가 잘 맞는다. 그러나 몸은 안 맞는다.

처음 커피를 마셔본 건 중학생 때였다. 새까만 커피가 담겨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컵을 한 손에 들고 길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약처럼 생긴 건 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했다. 집에서 언니가 새까만 가루를 컵에 붓고 따뜻한 물을 부으니 내가 봤던 새까만 물이 완성되었다. 궁금해서 한입 마셔봤다. 처음 맛본 커피는 그냥 쓴맛이었다. 쓴맛이 싫어서 가루약도 안 먹는데 사람들은 왜 이런 걸 찾아마실까 그때는 이해가 안 됐다. 그렇게 불쾌한 첫 만남이었지만 14살의 나는 그런 쓴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고 부러웠기에 괜히 나도 친구들에게 커피를 마실줄 안다고 거들먹거렸다. 한 모금 마셔본 거 가지고 맛이 어떻다는 둥 너네는 커피맛을 모른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마실줄 아는 척 맛없는 커피를 가끔 마셨는데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커피를 달고 살게 된 것이.


나는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맛이 없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오로지 맛있어서 먹는다. 신기하게도 마시다 보니 진실된 커피의 참맛을 느끼게 되었고 커피를 찾아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커피에는 내 입에 맞는 맛있는 커피가 있고 맛없는 커피가 있다.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으면 그 카페나 그 원두만 고집하기도 했다. 나는 고소하고 산미가 적은 커피를 좋아한다. 씁쓸하면서도 진한 커피를 아이스로 먹을 때면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내려가고 뜨거웠던 머리가 식어진다. 머리가 차가워지면 갑자기 막혔던 일이 풀려나가고 폭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두뇌회전이 이루어진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읽거나 과제를 하면 꼭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게 대학생활 내내 먹었다. 그렇게 먹었던 커피가 독이었을까 다른 무언가가 원인이었을까 커피를 끊어야만 했던 순간이 왔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신물, 누워있으면 쓰려오는 명치, 잦은 헛구역질로 몸의 이상을 눈치챘다. 불편해서 내과를 방문했다. 병원에서 증상을 나열했더니 '위염 증상이 보이니 약을 며칠 먹읍시다 그래도 아프면 다시 오세요'라고 하셔서 약을 처방받아 3일, 5일 먹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약을 먹는 순간에만 괜찮고 약을 다 먹고 며칠 지나면 다시 기능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다시 방문한 병원에서는 위 내시경을 제안했고 그렇게 위 내시경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는 새빨개진 위벽과 헐어버린 식도가 나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위염과 역류석 식도염이란다. 헬리코박터균도 발견되어 독한 약을 일주일, 위염과 식도염 약을 한 달 가까이 먹게 되었다. 약만 먹으면 다행이지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식이습관 변경을 요구하셨고 뒤에 덧붙이며 당부한 말이 바로 커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커피가 위염에 독이라며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다. 커피만큼은 포기 못할 줄 알았다. 근데 어린 20대 초반의 나는 무서운 의사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지켰다. 커피 없이 못 살정도는 아니잖아.라고 금방 생각했고 정말로 그렇게 나는 반년동안 커피를 끊었다. 


커피를 끊었던 덕분일까 위염 증상은 거의 사라지고 다시 평범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식사라고 표현하니 마치 그전에는 평범한 식사를 못했던 것처럼 얘기하는데 정말 그랬다. 밀가루를 줄이고 자극적인 음식은 지양했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 그게 하나의 즐거움인데도 말이다. 그런 낙을 잃고 살기를 6개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도 더 이상 탈이 나지 않는 상태로 돌아왔다. 기뻤다. 커피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내 예상보다 나중이었다. 6개월간 찾지 않으니 정말 커피를 굳이?라고 생각하도록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서도 커피는 찾지 않았는데 정말 뜬금없이 다시 마시게 되었다.


커피는 만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다. 학년이 넘어가고 새로운 사람들과 조별과제를 하게 되면서 학교 근처 카페에서 자주 모였는데 횟수가 잦아질수록 음료값이 부담되었다. 그래서 결국 가격이 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참 웃기지 않은가 그렇게 6개월을 끊어놓고 다른 음료값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커피를 찾았다. 오랜만에 맛본 커피는 여전히 씁쓸하고 입안에 감기는 고소함이 일품이었다. 힘들었던 지난날이 안개처럼 기억에서 사라졌다. 과제로 지끈거렸던 머리는 차분해졌고 다시 에너지가 솟았다. 이 맛을 잊었다니 나 스스로가 갑자기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도 약간의 양심은 남았는지 물을 조금 태워 연하게 마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현재의 나는 집에 캡슐커피머신을 들여놓고 좋아하는 캡슐커피를 옆에 20개 정도 쟁여둔다. 매일 같이 한잔씩 꼭 마시는 것 같다. 커피가 가까이 있으니 자주 손이 간다. 그래도 사 먹는 돈 아끼는 셈이라 캡슐커피머신 산 걸 후회하진 않는다. 물론 안 먹을 수 있는 커피를 집에 있으니 마시게 되는 경향은 있지만. 나는 맛있는 밥을 먹고 나면 커피가 당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커피를 마시러 가야 한다. 달달한 디저트를 먹을 때 커피는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 복잡한 업무를 할 때면 커피로 긴장을 풀고 에너지를 얻는다. 그럴듯한 핑계를 달며 나는 항상 커피를 찾는다. 다시 몸이 나빠지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나름 빈속 커피는 지양하고 하루 한잔이상은 마시지 않으며 마시더라도 무조건 연하게 마신다. 이게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하하. 하지만 이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져서 고집하고 있다. 실제로 식도염 증상은 많이 옅어졌고-사라졌다고는 못하겠다- 병원 통학은 끊은 지 오래됐다.


 커피는 중독이자 습관이다. 누구는 이 습관이 나쁘다고 할지도, 누군가는 나도 마찬가지라며 공감할지도 모른다. 뭐 어떤가 건강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을 찾아 적당히 즐기면 된다. 무엇보다도 내가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를 마실 때 행복하면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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