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점심시간 싱잉볼 명상의 추억
2024.11.05. (화)
아빠 어딨어 엄마, 엄마 어딨어 아빠 하면 항상 무슨 집이 100평도 아닌데 엄마를, 아빠를 그렇게 찾아~ 하던 아빠 엄마. 더 좁아진 공간지만 여전히 하루종일 핸드폰을 찾고 가방을 찾고 충전기를 찾는다. 분명 어제도 그제도, 지난주에도 입었는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 긴팔 잠옷을 찾다가 결국 반팔 잠옷을 입고 잠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목이 좀 잠긴 것 같아 어제 사온 티를 내렸다. 제주도에서 며칠간 종일 차를 마시면서 명상과 요가를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뭔가 요가 후에 차를 마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제 사온 파인애플 녹차였다. 차에서 좀 묘한 달달한 향이나 맛이 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딱 그런 맛이었다. 그렇지만 녹차에까지 파인애플을 넣었어? 하며 호기심에 사 온 본인 탓을 할 것.
아침으로 양배추쌈밥을 만들어 먹었다. 대충 안에 참치랑 고추장을 싸서 먹으려고 했는데 일요일에 챙겨주신 된장국과 찌개 그 사이 어딘가의 된장국찌개가 있어서 함께 싸서 먹었다. 전엔 된장 같은 건 정말 잘 안 먹었는데 스스로 양배추를 삶아서 쌈밥을 만들어 먹는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밤비 부모님께서 여행 오시면서 한국 음식을 많이 챙겨 주셨는데 그중 한국의 강된장 컵밥이 있었다. 이번에도 돌로미티였나.. 왜 모든 이탈리아의 추억이 돌로미티에 있는 것 같지. 하나 데워서 나눠 먹는데 맛있어서 둘이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컵밥 2+1 할 때마다 꼭 골라 먹는 메뉴가 되었다. 요즘 과일을 안 챙겨 먹었는데 과일 많이 먹고 와! 하는 엄마의 말에 망고까지 후식으로 잘라먹었다.
스페인어 선생님은 계속해서 그래서 오늘은 킥오프 미팅 했어? 내일은 한대? 언제 한대? 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나의 일 시작 여부를 물어봐주셨다. 이 즈음되니 일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과 평생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누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와서 한창 비행기표를 찾아보고 있는데 폴폴킴이 이마트에서 찍은 '치키타 코스타리카 바나나 1묶음, 4,480원' 사진을 보내줬다. 우연히 나도 바나나를 들고 있었는데 내 바나나도 Chiquita라고 쓰여있는 바나나였다. 치키타? 그저 코스타리카 농장인 줄 알았는데 미국, 스위스, 코스타리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생각해 보니 여기서 chiquita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혹시 그래서 자꾸 아래층 친구가 마이 리틀 에스더~하는 건 아닌가까지 생각이 미쳤다.
오늘도 요가 수업을 들으며 이게 운동이 맞나.. 하며 열심히 따라갔다. 어제와 다른 선생님이었는데 노트를 들고 와서 보면서 다음은.. 이 자세.. 이렇게 해서~ 하며 수업을 진행하셨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엔 의자를 활용한 자세를 하고 쿨쿨 시간을 주셨다. 이 쿨쿨 시간을 Savasana 사바사 나라고 하는데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빗소리, 기차 경적 소리를 듣다 보니 곧 일어나서 사무실로 올라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목요일 점심시간이면 명상실에서 싱잉볼 명상이라고 쿨쿨 자고 있으면 옆에서 싱잉볼을 쳐주셨다. 집에서 회사까지 두 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출근하는 날은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명상.. 은 잘 모르겠고 잠깐 편하게 잘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한 시간이었다. 점심식사를 희생하고 팀원들과 함께 가서 듣거나 동기들이랑 같이 신청해 듣기도 했는데 꼭 코를 고는 남자 책임님들이 한 두 분 계셨다. 당시엔 편히 자지 못해 원망스러웠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다 추억이다. 수업이 끝난 뒤, 돌아갈 사무실은 없지만 기찻길을 따라 따뜻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