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야간 축제를 하더군요.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가 자야할 시간이 다가오기도 해서 조금은 망설였습니다. 사람이 많은 축제장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잠들어서 집오면 잠이 완전히 깨버리면 어떻게 하지?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딱 한 가지 생각으로 축제장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여름밤을 걸어보겠어?'
차를 타고 약 40분, 축제장 주변엔 차를 주차할 곳이 없어 조금은 먼 곳에 차를 두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조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 데리고 지하철 몇번 타봤다고 금새 익숙해진 저희 부부. 그리고 제가 같이 가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행해주신 장인어른과 장모님까지. 온가족이 총출동했습니다.
야간 축제장의 소음에, 각종 행사 소리에 축제장은 말그대로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간신히 유모차에 태워 이동하면서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프리마켓도 가보고 식당도 가보고 아이가 좋아하는 불이 반짝거리는 풍선도 사줬습니다.
아, 물론 불이 반짝거리는 풍선은 정말 효용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만족하면 됐다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죠. 이거 하나만 있으면 어디를 가도 괜찮다는 아이의 표정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밤 늦게 어디를 나와본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내와 함께 밤거리를 걸어본 적은 도대체 언제였는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가 태어나서 정말 좋긴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내와 함께 늦은 밤, 약간의 습하고 더운 공기를 마시며 돌아다녔을 때가 그립더군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밤거리를 걷던 중 한켠에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과 함께 동행한 아빠까지. 참 예쁜 부녀지간이었습니다. 밖에 나가보자는 딸과 마지못해 움직였던 아빠, 집에 있고 싶다며 징징거리는 딸을 달래서 여름밤 거리에 데리고 나온 아빠. 어떤 모습으로 나왔던 그 자체만으로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아이가 좀 더 크면 이 여름밤 거리를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의 모습, 조금 더 커서 중학생 사춘기가 된 아이, 그리고 고등학생을 거쳐 성인이 된 아이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 책장을 후루룩 넘겼습니다. 그렇게 넘어가던 책장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지금 이 순간에 멈췄습니다.
앞으로 올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참 재미있고 설렙니다. 그러다 문뜩 지금 눈 앞에 있는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저 밤 산책 거리에서 느꼈던 제 감정이 딱 그랬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불이 반짝거리는 풍선을 든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내와 걷던 밤거리를 그리워하다 아이와 함께 걷는 지금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언제 또 이렇게 커서 엄마와 아빠를 따라 나올 수 있었나. 아쉽게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면서 그리워하기보다 지금 현실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인파를 뚫고 지나갈 때도 참 덥고 습한 날씨였지만 마음만큼은 시원하고 상쾌했습니다. 땀이 줄줄 흘렀지만 힘들지 않았죠.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했습니다. 잘 커준 아이에게 고마웠고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한 아내한테 고마웠습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여름밤을 걸어보겠어?'
내일은 집 주변 여름밤을 또 걸어볼까. 작은 생각이 머리 속 책장에 살며시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