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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니왕 Sep 25. 2024

성스러운 사랑 23화

1-23화 인연

 다음날도 우리는 당구장에 모였다.

 철수가 없는 거 빼고는 달라진 게 없다.

 “어떻게 하노?”

 “뭘 어찌해? 애 낳아야지. 어쩌겠노?”

 “아! 이 새끼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네.”

 “근데 그 뭐고? 애 떼는 수술?”

 “낙태 수술?”

 “맞다. 그래 낙태 수술을 그것도 함부로 못 하는 거 아니가?”

 쥐똥이는 정말 궁금해하는 것 같다.

 그나마 우리 중에 제일 신중하다고 하는 병팔이가 말을 한다.

 “니 생각은 뭔데? 근데 수술을 하든 낳든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거 같은데? 니가 보호자라고 하면 수술해 주나?”

 “그래서 부모님께 말해라고? 나는 죽어도 말 못 한다.”

 “우리끼리 이런다고 답이 나오나? 답 안 나올 거 같은데?”

 “미치겠다. 어쩌노?”

 그렇게 했던 말 또 하고 그렇게 아무 결정을 내리지도 못하고 나는 집으로 간다.

 

 “2층에 전화해서 다 내려오라고 해라. 국수 다 됐다고.”

 “네.”

 나는 힘 없이 대답한다.

 엄마가 쓱 쳐다본다.

 며칠 시무룩해 있는 내가 신경 쓰였나 보다.

 “여보세요. 야 이말자! 엄마가 다 내려오란다. 국수 다 됐다고.”

 “알았디. 근데 니 목소리가 왜 이렇노? 무슨 일 있나?”

 “없다.”

 식구가 많다.

 큰 상을 두 개 붙인다.

 가끔씩 일요일이면 이렇게 말자집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

 그래도 큰 누나랑 둘째 누나가 없어서 다행이다.

 말자는 말숙이랑 동식이를 챙긴다.

 “아줌마~나는 많이 주세요.”

 “그래~ 우리 동식이 많이 줄게. 말숙이도 많이 먹어라.”

 “성님도 앉으라.”

 나는 국수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엄마는 내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자꾸 내를 힐끔 쳐다본다.

 

 “그래? 언제 올라가기로 했다고?”

 “말자 아빠가 9월 말에 나온다 카니깐 이번 추석 전에는 갈 거 같은데 그때 되어봐야 확실하게 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말자를 쳐다본다.

 “너그 아빠 들어오시나? 완전히 들어오는 거가?”

 “그런가 보다.”

 말자 아빠는 배를 타시는데 이번에 완전히 들어오신다고 한다.

 막내 누나가 나를 째려본다.

 “인간아! 집에를 붙어 있어야지 뭐를 알지? 방학 내내 집구석에 안 붙어 있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지.”

 “뭔 말이고?”

 “국수나 쳐드세요.”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를 쳐다보는데 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말한다.

 “말자 아빠가 나오면 경주로 이사 간단다. 말자 아빠 고향 집으로 이사 간다. 거기 집도 그대로 있고, 말숙이도 여기보다는 거기서 지내는 게 덜 위험하고 편할 거 같아서 이사 간단다.”

 “아~ 그렇구나! 이야 이말숙이 좋겠네?”

 “말숙이 말숙이 좋다. 거기는 강아지도 강아지도 키울 수 있다. 있다. 말숙이 억수로 좋다. 좋다.”

 말숙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한다.

 나는 말자를 쳐다본다.

 마지막 같아서 괜히 못 챙겨 준 거 같아서 나는 김치를 말자 국수에 올려준다.

 “니 왜 이라노? 내 간다니깐 이라나? 하하 어쩌노? 나는 안 가는데? 나는 니랑 살 건데?”

 “뭔 소리 하노?”

 “하하 말자는 우리랑 살 거다. 학교 문제도 있고, 이제 좋은 고등학교 들어갔는데 공부해야지. 저기 큰 누나방 비우고 말자 주기로 했다.”

 “맞나? 그라면 동식이는?”

 “내는 경주 간다. 거기서 학교 가기로 했다. 행님아 거기 억수로 좋다. 놀러 온나!”

 다들 웃으며 국수를 먹는데 나는 웃을 이유도 없고, 웃을 기분도 아니다.

 자꾸 심장이 빠르게 뛴다.

 

 한참을 국수를 먹고 있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계십니까?”

 “누구시오?”

 엄마는 현관문을 연다.

 다들 누군지 현관문을 쳐다본다.

 “여기 맞나? 여기 맞는가 보네?”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다.

 “아줌마가 왜? 어떻게?”

 “니 이 새끼 나온 나? 니 오늘 나한테 죽어봐라.”

 아줌마가 신발을 신고 다짜고짜 나한테 달려든다.

 “와이라는교? 누구신데 이라는교?”

 엄마는 놀래서 말린다.

 “이 여편네 가만히 보니깐 병원에서 그 여편네 아니가?”

 뒤에 서서 가만히 보던 말자 엄마가 선영이 엄마를 알아보는 거다.

 “내가 그때 아들 교육 잘 시키라고 했지? 오늘 다 죽어 보자.”

 선영이 엄마는 진짜로 다 죽일 듯 이제는 말자 엄마한테 달려든다.

 “아줌마 와이라는교? 저놈 엄마는 낸데?”

 엄마가 말리면서 이야기한다.

 선영이 엄마는 뭔가가 이상한가? 나를 쳐다보고 엄마를 쳐다보고 한다.

 “아줌마가 저놈 엄마인교? 그라면 저 아줌마는 누군교?”

 “내 동생입니데. 왜 이라는데요?”

 그제야 선영이 엄마는 마룻바닥에 주저앉더니만 울기 시작한다.

 “저놈이! 아줌마 아들이 내 하나밖에 없는 딸년을 이제 고2인데 애 엄마로 만들었다 아인교?”

 “뭔 소리인고? 누가 누구를 어찌했다고요?”

 모두가 밖을 쳐다본다.

 선영이가 울면서 서 있다.

 “너그들은 나가 있어라.”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막내 누나는 말숙이랑 동식이를 데리고 누나 방으로 들어간다.

 나랑 말자는 밖으로 나간다.

 선영이는 울면서 따라 나온다.

 대문 밖에는 미자가 서 있다.

 미자 가시나가 우리 집을 알려준 것 같다.

 말자는 나를 무슨 벌레 쳐다보듯이 본다.

 “미친놈 잘한다. 미친 거 아니가? 어떻게 그렇노?”

 말자가 나한테 욕이라는 욕은 다 쏟아붓는다.

 선영이는 그 자리에서 쭈그려 앉아 울기 시작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도망칠까도 생각해 본다.

 아니다. 올 게 온 거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

 근데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이상한 불안감이 맴돈다.

 미자는 선영이 옆에 쭈그려 앉아 같이 울기 시작한다.

 말자는 내를 잡고는 끌고 옆으로 간다.

 “몇 주 됐다고 하던데?”

 “모르겠다. 5주인가?”

 “5주? 미친다.”

 “근데 5주면 애 수술 못 하나?”

 “미친놈!”

 말자는 내 등짝을 내리치고는 선영이한테로 간다.

 “야! 오미자! 니도 알았나?”

 “아니다. 나도 몰랐다. 오늘 선영이 엄마랑 찾아와서는 이렇게 된 거다.”

 “야! 박선영! 가시나야! 니도 울지 마라. 운다고 해결되나? 어른들이 뭔 말해주겠지!”

 말자는 어른 같다.

 선영이는 눈물인지 콧물인지 닦고 나를 본다.

 “미안하다. 아까 우리 둘이 통화하는 거를 엄마가 안방 전화기로 듣고 있었나 보더라. 우리 이제 어쩌노?”

 “뭘 어째? 우리가 뭘 하겠노? 차라리 잘 됐다.”

 

 막내 누나가 대문 열고 나온다.

 막내 누나는 선영이 한번 쳐다보고 나한테 걸어온다.

 막내 누나는 내를 보더니 귀를 잡고 뒤통수를 있는 힘껏 내리친다.

 “아프다. 진짜 아프다.”

 “아프라고 때리지. 인간아 죽어라! 니가 인간이가? 쪽팔려서 어디다 이야기도 못하겠다.”

 “내가 이리될 줄 알았나?”

 “뭘 알아? 인간아 까져가지고, 으이구 으이구”

 “그만해라! 좀! 쪽팔리게 왜 이라노?”

 나는 괜히 막내 누나한테 화풀이한다.

 “말자야 애들 다 데리고 들어와라. 아버지가 들어오란다.”

 아버지의 낯선 표정 앞에 나는 침도 삼키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 채 마룻바닥 나무 나이테 숫자만 반복하며 살린다.

 그 옆에 덩달아 선영이도 긴장한 게 보인다.

 “그래 선영이다고 했나? 아픈 데는 없제? 편하게 앉아라.”

 “괜찮아요.”

 아버지는 선영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편하게 앉으라고 한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선영이 엄마 쪽을 힐끔 쳐다본다.

 그래도 화가 많이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엄마를 쳐다보니 엄마는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라신 것 같다.

 “그래, 생명인데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겠노? 그렇다고 너그 인생도 있는데 쉽게 할 수도 없고, 일단 내일 병원부터 가보자. 선영아 알았제?”

 “네.”

 선영이는 숨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들릴 듯 말 듯 대답을 한다.

 “선영아, 아줌마가 미안하다. 힘들었제 어쩌노? 애가 애를 가졌으니....”

 엄마는 한숨을 푹 쉬시며 선영이 손을 잡는다.

 그렇게 무섭고 사나웠던 선영이 엄마도 아무 말 없이 물만 마신다.

 “그래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일단 아줌마 하고 병원에 가보자.”

 “네”

 그렇게 선영이를 보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다.

 엄마도 아무 말이 없다.

 “엄마! 내 옥상에 좀 있다가 올게.”

 엄마는 알았다는 눈빛만 보내고 대답이 없다.

 나는 옥상에 올라간다.

 옥상 평상에 대자로 누웠다.

 “자. 마시라!”

 말자가 내 옥상 올라가는 거를 봤나 보다.

 못 볼 수가 없다.

 안방 창문을 지나쳐야 한다.

 말자는 캔맥주 하나를 준다.

 “안된다. 괜히 이거 마셨다가 내려가서 아버지 알게 되면 내 진짜 죽는다.”

 “괜찮다. 한 캔 마셔라. 엄마가 갖다 주라 하더라.”

 “맞나?”

 “맞다. 근데 니 선영이 어찌할 건데? 낳을 거가?”

 “모르겠다. 진짜 내 인생 왜 이렇노? 선영이가 싫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어떻게 지금 애 아빠가 되노?”

 “그렇게 니는 여자가 좋나?”

 “뭔 소리고?”

 “아니다. 니도 힘들 건데, 니도 니지만 나도 참 바보 같다. 맞다. 내가 바보지 바보다.”

비비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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