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럴까? 사랑인 걸까? 그거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기 아빠가 되었을 때 생각? 뭐! 내가 특별해 보이고 애들하고는 다를 거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애가 애를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뭐라도 해서 벌면 우리 세 명을 먹고는 살겠지.’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말 그대로 머릿속은 엉망진창이다.
불안하다.
“집에 가자.”
금방 학교 온 것 같은데 벌써 마쳤다.
“야! 정신 차려라. 내 말 듣고 있나?”
“니 뭐라 했나?”
집에 가는 길에 쥐똥은 뭐라 씨불씨불거리기는 했는데 하나도 안 들렸다.
“당구장 가서 애들하고 한판치고 돈 모아서 맥주나 한 캔 하자고.”
“안된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 일단 당구장은 가자. 선영이한테 삐삐부터 쳐보게.”
선영이한테 호출하고 앉았다. 요구르트를 하나도 다 빨기 전에 전화가 온다. 백 프로 선영이 일거다.
사장님은 손짓으로 전화받으라 한다.
“여보세요. 어찌 됐노?”
“그게 자세한 거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병원에서는 일단 수술 안 된다 카더라.”
“뭐라고? 그라면 낳아야 한다 말이가?”
나는 아무도 안 들리게 말한다.
“일단 병원에서는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아빠가 니 내일 데리고 오라는데?”
“너그 아빠가? 당연히 찾아뵙기는 해야지. 근데 너그 아빠 무섭나?”
“아니다. 우리 아빠는 안 무섭다. 그라고 우리 엄마도 평상시는 안 무섭다. 내일 몇 시에 마치노?”
“몰라. 내가 일단 내일 삐삐 칠게. 내 이제 집에 가 봐야겠다.”
“그래, 어쩌노 혼나는 거 아니가? 걱정이다.”
“괜찮다. 나는 니가 더 걱정이다. 일단 나중에 삐삐칠게.”
“응”
전화기를 끊고 멍하게 있으니 쥐똥이 달라붙는다.
“뭐라 하던데? 애 낳아야 한다나?”
“모르겠다. 일단 병원에서 수술 안된다 캤나 보더라. 내 집에 갈게. 내일 학교 갈 때 보자.”
“그래 먼저 가라.”
“다녀왔습니다.”
“그래, 니 앉아봐라.”
아버지, 엄마, 큰 누나, 둘째 누나까지 합세해서 나를 중간에 앉힌다.
엄마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팅팅 부었다.
엄마는 겨우 물을 한 잔 하시고 나를 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선영이 수술 안 된다 카더라. 뭣이 애도 약하고, 기간이 넘으면 그 수술도 못 한다 카더라. 다행히 지금은 애는 건강한 것 같다 하던데, 니는 도대체 어쩔라고 그랬노? 내가 못 산다. 어이구 부처님요 내가 살 수가 없다. 마! 그냥 팍! 죽으뿌고 싶다.”
엄마가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됐다. 울어서 뭐 달라지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할끼고? 니 아버지 말 단디 들어라. 니 지금부터 정신 단디 차리고 살아야 한다. 니는 이제 애 아빠가 되는 기다. 알았나?”
“네”
‘퍽’ 갑자기 둘째 누나가 뒤통수를 때린다.
“대답은 잘한다. 미친놈! 누구 인생 망치려고 그런 짓 하고 돌아다니노? 어이구! 정신 좀 차리라.”
둘째 누나는 방에 들어가 버린다.
엄마는 계속 울기만 한다.
“불쌍해서 어짜노? 어짜노?”
누가 불쌍하다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조용히 눈치를 본다.
아버지는 눈으로 방에 들어가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그래, 앉아라.”
나는 학교 마치고 선영이 집으로 갔다.
선영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깜짝 놀랬다. 아버지가 너무 젊고 멋지다.
선영이 아버지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죄송합니다.”
한 숨을 한번 쉬시고 나를 한번 보고, 선영이를 한번 보고는 다시 한 숨을 쉬신다.
“내 니 보면 쥑이뿔 거 같아서 니 안 볼라 캤는데, 어제 너그 아버지가 가게로 찾아왔더라. 연세도 지긋하신 분이 아들 잘 못 키운 거 용서해 달라고 무릎을 꿇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노?”
“죄송합니다.”
“죄송은 너그 아버지한테 해라. 니도 나중에 딸 낳아서 키우다가 니 딸이 고등학교 때 임신했다고 하면 어떻겠노? 마 그 새끼 잡아서 쥑이뿌겠제? 다 똑같다. 나도 미치고 팔짝 뛰겠다. 니 쥑이뿌고 싶다. 내 딸이지만 선영이 저 가시나도 마 그냥 다리몽둥이를 뿌싸뿌고 싶다.”
“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영이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처음과 다르게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한참을 쳐다만 보고 계신다.
누군가 내 심장을 쉴 새 없이 뚜드리는 것 같다.
“너그 아버지를 많이 닮았네. 눈빛이고 이목구비가 많이 닮았네. 그래 어떻게 선영이 저 가시나를 꼬셨노? 말해봐라?”
“아빠! 내가 먼저 좋아서 병원 찾아가고 그래서 그렇게 된 거다.”
“조용히 좀 있어라. 가시나야!”
선영이 엄마가 선영이를 말린다.
“그래, 공부는 잘하나? 대학은? 무슨 과를 생각하나?”
“공부 잘한다. 저기 ㅇㅇ고등학교 다닌다.”
또 선영이가 불안했는지 끼어든다.
“공부는 선영이가 더 잘합니다. 대학은 아직 생각 안 했는데, 지금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공부하면 충분히 자신 있습니다.”
나는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내가 생각해도 시원시원하게 대답한 것 같다.
“오! 이놈 봐라. 자신감 봐라. 똑 부러지게 말하는 거 봐라.”
처음으로 선영이 아버지는 웃으신다.
“뭔 소리하노? 할 말만 좀 해라.”
선영이 엄마가 아버지 허벅지를 꼬집는다.
선영이가 귓속말로 “우리 엄마가 4살 많아!” 말한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할 거고?”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 부모님들께서 시키는 대로 할 생각입니다.”
“그래, 맞다 그게 정답이지. 지금은 너그 둘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도 이 나이에 벌써 할아버지 소리 듣는 게 이상하다.”
“죄송합니다.”
“대충 이야기했으니 됐다. 우리는 장사 준비해야 되니깐, 선영이하고 집에 올라가서 있다가 가라.”
“네, 알겠습니다.”
선영이 집은 유명한 고깃집을 한다.
장사도 잘 되고 크고 안에도 고급스럽게 되어있다.
나는 선영이 손을 잡고 나온다.
“니 억수로 말 잘하데?”
“아니다. 내 억수로 긴장했다. 뭔 말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손에 땀나는 거 모르겠나? 근데 선영아! 우리 집은 너그 집처럼 부자 아니다. 우리 아버지 공장 다니시고, 엄마도 1주일에 4번은 공장 나간다. 그리고 내 위로 누나만 세 명인 거는 알제? 그래도 괜찮겠나?”
“그런 거는 상관없다. 니만 있으면 되고, 그런데 만약 니가 바람피우거나, 내한테 거짓말하고 그러면 내는 그냥 약 먹고 죽으뿔기다.
알았나?”
“가시나야!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나는 갑자기 혜영이 누나가 생각나서 무서웠다.
“그러니깐 바람피우지 말라고! 알았나! 그라고 내 비밀 하나 말해줄까?”
“뭔데?”
“우리 아빠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내 낳았다. 우리 엄마는 23살 때 아빠 말로는 순진한 고등학생을 엄마가 꼬셔서 낳게 됐다는데, 엄마는 아빠가 꼬셨다고 하더라.”
“성님아! 내 자주 올게. 말자 때문이라도 자주 올 거다. 성님도 놀려 오면 되지? 뭐 한다고 울고 그라노?”
“안 운다. 어여 가라! 말자 아빠 기다린다.”
오늘 말자집 이사하는 날이다.
말자 아버지가 이제 배를 그만 타시고 완전히 오신 거다.
경주에 시골집이 있어서 거기로 이사 가는 거다.
말숙이도 그렇고 아저씨가 시골에 살고 싶다고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아침부터 나와서 짐을 들어주시니 이삿짐 실어 나르는 것이 금방 끝났다.
말자는 학교 때문에 우리 집에서 살기로 했다.
“똥식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말숙이 누나 잘 보고 있어라. 행님이 한번 갈게.”
“행님아! 꼭 온나.”
말자는 아줌마랑 이야기하고 들어온다.
아침부터 선영이랑 미자가 도와준다고 와있다.
언제부터인지 세 명은 아주 친해졌다.
“말자야! 니 괜찮나?”
“뭐가? 내는 좋은데, 말숙이 잔소리도 안 듣고 얼마나 좋노? 가시나야! 니 배 속에 아기 걱정이나 해라. 내가 가만히 있으라니깐 굳이 돕는다고 와 가지고는 그냥 미자 저 가시나만 오면 되는데.”
“뭐라노? 가시나야 나도 연약하고 집에서 귀한 딸이다. 우리 짜장면이나 묵으러 가자. 말자야 쏴라.”
구석에서 조용히 박스를 정리하고 있는 쥐똥이가 밖으로 나온다.
“동우야! 니 있었나?”
우리는 집 앞에 있는 중국집으로 간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2층은 세를 주려고 했다.
그런데 선영이와 내 때문에 2층을 한동안 둘째 누나랑 말자가 쓰기로 했다.
나중에 우리가 살면 된다고 하신다.
나는 조금씩 적응해 간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그런데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인다.
애들이 수근 거리는 것을 보면 꼭 내 욕을 하는 것 같다가도 지나가는 아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나는 점점 말수도 없어졌다.
시간은 또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내가 생각을 해서 그런지 선영이의 모습이 점점 임산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선영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님 가게 도와주고 있다.
토요일이 되면 우리 집에 온다.
나도 토요일은 학교 마치면 바로 집으로 간다.
똥우는 같은 학교니깐 괜찮지만, 다른 친구들은 자주 못 보게 되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선영이의 배는 조금씩 나온다.
안 그래도 작고 아담한 아이가 배까지 나와 힘들어하는 걸 보니 괜히 안쓰러워진다.
“빨리 좀 온나. 왜 이리 늦었노?”
“언제 왔어? 내 마치고 뛰어 온 거야!”
선영이는 언제 왔는지 우리 집에 와있다.
가게를 털어서 가져왔는지 고기랑 이것저것을 많이도 싸서 왔다.
“이 무거운 거를 그 몸으로 들고 왔나? 버스 타고 왔나?”
“아니다. 아빠가 태워줬다.”
“아버님이? 그래서 아버님은 가셨나?”
“응 저기 골목 입구에 내려 주고 갔지? 근데 막내 언니 어디 갔어? 토요일인데 방에 없네? 일찍부터 도서관 갔나?”
“모르지? 근데 니 이제 무거운 거 들고 그러지 마라.”
“오.. 내 걱정하는 거야 우리 서방님! 이리오시오! 뽀뽀해 줄게!”
“왜 이라노? 말자도 안 왔더나? 삐삐 치보지?”
“말자는 조금 있다가 도착한다고 전화 왔다. 미자도 올 거고.”
“나는? 뭐 하고 있노?”
“서방님은 내 옆에 딱 대기하고 있어야지.”
우리는 제법 어른이 된 것 같다.
“벌써 수능이다. 오늘 선영이 집에 오나?”
“몰라. 왔다 갔다 힘들어서 오겠나? 모르겠다.”
“맨날 수능 칠 때는 왜 이리 춥노? 내년에 우리도 수능 치는 날이 금방 오겠제?”
“그러게 금방 오겠지.”
“근데 니 괜찮나?”
“뭐가? 괜찮다. 요즘 매일 기쁘다.”
“기쁜데 얼굴은 죽을 맛을 하고 다니노?”
“뭐가 뭔지 모르겠다. 똥우야 사실은 존나 불안하다. 내가 애 아빠가 된다는 거는 받아들이겠는데, 학교를 다녀야 되고, 뭘 해서 먹고살아하나? 걱정이다. 모르겠다.”
“잘 될 거다. 니가 지금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이가. 그냥 지금은 학교 다니고 부모님이 하라는 거만 하면 안 되나?”
“아는데 그게 잘 안된다. 모르겠다. 낼 보자. 내 들어간다. 가라.”
“그래 쉬라.”
그렇게 쥐똥이랑 헤어지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내 마치고 집에 왔다.”
“응. 그래! 내 갈라고 했는데 날도 춥고 그래서 그냥 집에 있다.”
“잘했다. 힘든데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근데 목소리가 왜이렇노? 어디 아프나? 감기 걸렸나?”
“아이다. 괜찮다. 자다가 일어나서 그렇다. 쉬라~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선영이와 전화를 끊고는 그냥 옷도 안 갈아입고 누워 버렸다.
갑자기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혜영이 누나 보내고, 한참을 힘들어하며 보냈는데, 지금 이렇게 된 게 참 한심스럽다.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추운지 자꾸만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게 된다.
“누나 오래만이네. 잘 지냈지? 누나 근데 누나 결혼했어? 왜 애를 안고 왔어? 누나 애야? 한 번 안아봐도 돼?”
누나는 말없이 아기를 나에게 안아봐라며 주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어느 할아버지가 그 애를 냉큼 안아버리면서 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