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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니왕 Sep 30. 2024

성스러운 사랑 25화

1-25화 연연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다.

 그 할배의 표정, 뒤따라가는 혜영이 누나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그리라 해도 그릴 수도 있을 정도다.

 꿈을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너무 안 좋다.

 그 갓난아기는?

 ‘니 아기 아니다’라고 하는 갓 쓴 할아버지?

 불길하다.

 ‘선영이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걸까? 뱃속에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나는 미칠 것 같다.

 다시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고 그 꿈만 자꾸 생각이 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6시는 된 듯하다.

 부엌에서 엄마가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와? 벌써 일어났노? 오늘 대학 시험이다고 너그 학교 안 간다며?”

 “학교 안 간다. 잠이 안 와서 일어났는데, 내 희한한 꿈을 꾸가 찝찝하고 불길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엄마는 고무장갑을 벗고 나를 쳐다본다.

 “와? 무슨 꿈인데? 꿈에 무슨 돼지라도 나왔나?”

 “그게 아니고 안 좋은 꿈인데 찝찝하다.”

 “뭔 꿈인데 손아! 퍼뜩 말해라. 말 안 할 기면 때리 치우고

들어가라.”

 “그게. 어떤 할배가 나왔는데, 내가 진짜 갓난 아기를 안고 있는데, 그 할배가 ‘니 애기 아니다.’그라면서 뺏어가 사라져뿌다.”

 엄마 얼굴빛이 안 좋다.

 “앉아봐라. 자세히 이야기해 봐라. 누가 니한테 애를 줬는데?”

 “그거는 모르겠다.”

 차마 혜영이 누나라는 말은 못 하겠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 그 할배가 어떻게 생겼노? 키가 크더나?”

 “키는 모르고 갓을 쓰고, 흰 수염이 길더라.”

 “아이고 어쩌노 너그 할배가 나왔네. 너그 할배가 근데 왜 애를 델꼬 갔는교? 선영이 어디 아프다고 하는데 없다 카제?”

 “응. 어제도 통화했다. 별일 없다 카던데.”

 “아이고야 무슨 그런 꿈을 꾸노? 나중에 아침 묵고 니 선영이 집에 가봐라. 아이고 별일이야. 관세음보살”


 “2층에 올라가서 둘 다 아침 묵으려 내려오라고 해라.”

 “시간 되면 알아서 내려오지 꼭 깨우려 가게 만들노.”

 나는 투덜거리며 2층으로 간다.

 나는 2층 현관문을 열고는 그냥 큰소리로 고함지르고 내려온다.

 “야~ 이말자~ 아침 먹게 누나 깨워서 내려온나.”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오늘은 그나마 말자하고 나는 학교를 안 가서 여유 부린다.

 아침밥은 항상 다 같이 먹으니 상을 2개 부친다.

 “밥 묵자. 많이들 먹어라. 말자 니는 이번에 몇 등 했노?”

 아버지는 내 성적은 묻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 밥 묵는데 그런 거 물어보노? 말자는 공부 잘한다. 아버지 아들 저놈이 문제지.”

 막내 누나가 말자 편을 든다.

 아버지는 한번 나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안 하신다.

 “니도 공부 좀 해라.”

 “알았다.”

 막내 누나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토를 안 달고 대답해야 조용하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다.

 갑자기 닭살이 돌고 불길한 전화라는 예감이 든다.

 “아침 댓바람부터 누고?”

 엄마는 밥숟가락을 놓으시고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전화를 받으신다.

 엄마도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 것 같다.

 “여보세요. 예......”

 엄마는 수화기를 들고는 한참을 말이 없다.

 “그래서 예.... 어짜노? 그라면 우리 선영이는 괜찮은교?”

 선영이 이름이 나오니깐 모두가 숟가락을 놓고 엄마를 쳐다본다.

 “알겠습니다. 밥 먹고 우리 아 보낼게예.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 네...”

 엄마는 전화를 끊으시고는 나를 한번 보고 아버지를 한번 보고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울먹이신다.

 “선영이가 새벽에 배가 아파서 병원 갔는데, 아가 잘못됐는 것 같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나는 앞이 깜깜해지는 걸 느낀다.

 “이게 무슨 일이고 뭐가 어떻게 됐다 말이고?”

 아버지는 흥분하셨는지 말을 더듬으신다.

 “선영이는 괜찮다 하는데 병원 가봐야 알 거 같아예.”

 “지난주에 왔을 때도 괜찮더만, 이게 뭔 일이고, 아이고야”

 아버지는 숟가락을 놓으시고 방 한쪽 구석에 있는 담배를 들고나가신다.

 “니 준비해서 가봐라. 아빠하고 엄마는 일하러 가야 된다. 저녁에는 들릴 수 있을 기다.”

 “알았다.”

 “말자야 니도 좀 따라가봐라. 저놈아 어찌 될까 봐 불안타.”     

 

 “니 괜찮나?”

 말자는 택시 안에서 불안에 손톱만 뜯고 있는 나를 쳐다본다.

 “말자야. 내 때문이다. 내 때문에 아기가 잘못됐는 것 같다.”

 “그기 왜 니 때문이고? 니 때문에 아니다. 병원 가보면 알겠지. 니 때문에 아니다. 니 단디 마음잡아라. 또 혜영이 누나 때처럼.....”

 말자는 말을 하려다 멈춘다.

 “내가 잠깐 나쁜 마음 먹어서 우리 할배가 아기를 델꼬갔다. 내가 봤다. 할배가 델꼬 가는 거.”

 “뭔 소리하노 정신 차리라. 쫌!”

 말자는 내 손을 꼭 잡는다.

 우리는 응급실로 간다.

 응급실 입구 구석진 곳에 선영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그래.. 왔나? 들어가 봐라. 제일 안쪽에 있다.”

 선영이 아버지의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니가 무슨 잘못이고 다 지 팔자인 기라. 됐다. 들어가 봐라.”

 선영이 아버지는 나를 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신다.

 아직 병실이 없어서 급히 수술하고 응급실에 있다고 한다.

 

 선영이 어머니는 선영이 팔을 쓰담으면서 아무 말 없이 계신다.

 “어머니”

 선영이 어머니는 나를 보고는 등을 두드리고 나가신다.

 말자도 선영이 얼굴 한번 보더니 따라 나간다.

 선영이는 억지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나를 안 본다.

 “선영아. 괜찮나? 다 내가 잘못했다. 다 내 때문이다. 다 내 때문이다. 미안하다.”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선영이도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미안하다. 선영아 내가 더 챙기고 더 잘해줘야 했는데,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선영이는 계속 울기만 한다.

 얼마나 울었는지 울음소리가 안 나온다.

 선영이는 훌쩍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이제 어떻게 하노? 우리 애 불쌍해서 어쩌노”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우리 애 천국 갔겠제? 천사니깐 천국 갔겠지.”

 “그래. 아무 걱정하지 마라. 천국 갔다. 이쁘게 하고 갔다. 내가 봤다. 이쁘더라.”

 나는 자꾸만 어제 꿈에서 본 아기가 생각이 난다.

 “으앙~ 우리 아기 불쌍해서 어쩌노”

 선영이는 또 울기 시작한다.     

 의사 말에 의하면 아기가 죽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게 임신 초기에 필요한 호르몬 수치가 충분하지도 않았고,

유전적 문제도 있었던 같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선영아~ 문 열어봐라. 내 문 뿌싸뿐다. 열어봐라.”

 “내일 온나. 내 잘 거다. 제발 쫌~ 내 지금 니 못 보겠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며칠을 이렇게 선영이 집을 찾아와 실랑이를 한다.

 얼굴 한 번 못 보고 대화 한 번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한다.

삐삐를 쳐도 연락이 없고, 전화를 하면 받지도 않고,

 집에 문을 잠그고 나올 생각이 없다.

 이러다 선영이 마저 잘 못 될까 봐 너무 겁이 난다.

 무섭다.

 오늘도 선영이는 나를 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쫓겨나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못 봤나?”

 옥상에 멍하게 앉아있는데 말자가 올라왔다.

 “응. 가시나가 안 볼라 카네. 어쩌노?”

 “시간이 필요할 거다. 좀 기다려 봐라. 선영이도 선영인데 나는 니도 걱정이다. 작년처럼 그렇게.....”

 말자는 또 말을 멈춘다.

 “말자야! 내 부탁이 있다. 내일 니가 선영이 좀 만나보고 오면 안 되겠나?”

 “그거야 뭐 어렵나? 근데 선영이가 나는 볼라고 하겠나?

얼마 전에 미자도 안 본다고 했다 카던데.”

 “그래도 내일 한 번만 가봐라.”

 “알았다.”

 “내려가자. 엄마가 밥 묵으라 칸다.”     

 

 “밥 묵으라.”

 “잘 먹겠습니다.”

 너무 조용하다.

 분위기가 무겁다.

 “밥 묵으면서 들어라. 내 오늘 선영이 집에 들렀다가 왔다. 선영이 아버지도 만났고, 선영이도 보고 왔다.”

 뜻밖의 아버지 말씀에 우리는 수저를 놓고 아버지만 쳐다본다.

 “애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 내가 안쓰러워 죽는 줄 알았다.

선영이 서울에 있는 이모집으로 간다 카더라. 거기서 학교 다니려고 준비한다 카더라. 얼마나 울던지”

 “네? 왜요? 그라면 나는?”

 “손아! 니 같으면 지금 여기서 니 얼굴 보고하면 애 생각이 안 나겠나? 아무리 뱃속에 있었다 해도,애를 잃은 건데 안 힘들겠나? 나도 그래라고 했다. 그리고 정리 다 되고 좀 편안해지면 집에 오라고 했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나 나와버렸다.

 “니 밥 묵다가 말고 어디 가노? 선영이 찾아가지 마라. 애 힘들다.”

 엄마의 고함소리가 대문 밖에까지 들린다.

 ‘이 길로 선영이한테 갈까?’생각하다가 엄마의 고함소리가 귀에 맴돈다.

 

 ‘그래 내보다 더 힘들 거야. 기다리자.’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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