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이 양아치 새끼야! 앞으로 볼 생각하지 마라. 내 혼자 지랄을 했으니 내 알아서 할게. 뭐 저런 새끼를 내가 미쳤지.”
“뭐? 양아치? 미쳤나?”
은진이는 돌아서 가버린다.
마음은 붙잡아야 되는 걸 아는데 못 잡았다.
사실 많이 무섭다.
두럽다.
선영이랑은 다른 느낌이다. 아니 사실은 똑같은지도 모른다.
그때는 말을 하기 전에 부모님들이 알게 되어 우리가 한 것은 없었다.
‘어떻게 부모님께 말을 해야 할까?’걱정이다.
누나들의 눈초리도 무섭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은진이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알게 된 지 3달도 안 됐다.
도망치고 싶다.
‘나는 왜 이럴까? 뭐가 잘못됐을까?’아무리 생각해도 내 혼자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은진이를 만나야 된다. 만나서 결론을 지어야 된다.
“우리 엄마가 니 보잔다. 언제 부산 와?”
“나는 내일 부산 가려고. 니는 언제 부산 갔는데?”
“니 만나고 부산 바로 왔어?”
“괜찮아?”
“뭐가 괜찮아야 되는데? 너도 힘들지 모르지만 나는 더 힘들어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근데 엄마한테 이야기 한거가?”
“아니다. 아직 이야기 안 했는데, 만나는 사람 있다고 말했어.”
“알았어. 내일 부산 가서 일단 우리 만나자. 그 이후에 엄마는 만날게.”
전화를 끊고 나는 슈퍼에 들러 소주 두 병을 사 들고 집으로 간다.
다음날 눈을 뜨니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소주병만 방바닥에 뒹굴고 있다.
한심하다.
‘지금이라도 사라질까? 도망을 갈까?’온갖 생각이 다 든다.
냉정하게 우리의 앞길을 위해 수술을 택해야 하는지?
은진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은진이를 한 번도 결혼까지는 생각해 본 적은 더욱더 없다.
깝깝하다.
일단 부딪치자.
“내 여기 부산역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줘.”
나는 음성을 남기고 돌아서 나오는데,
저기 끝에서 축 처진 모습으로 은진이가 걸어온다.
한 번도 은진이의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던 같다.
항상 밝고, 앞장서서 돌진하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낯설고 애처롭다.
“어디 갈까? 니 밥 묵었나?”
“밥 대신 소주나 한잔하자.”
“가시나야. 미쳤나? 애한테 얼마나 안 좋은데 술을 먹노?”
정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결론을 지었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듣은 은진이가 날 뻔히 쳐다본다.
“니 지금 애 걱정하는 거야?”
“당연하지. 술이 얼마나 애한테 안 좋은데.”
“고마워.”
“우나? 왜? 우는데?”
“울기는 누가 우는데? 우리 고기 묵으러 가자.”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는 은진이는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나는 소주 한 병 묵어도 돼?”
“그래 먹어.”
나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
부산역에 내려 나오는데 걸어오는 은진이를 보고는 나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기로 한 것 같다.
“왜? 마음이 바꿨어? 그때는 당장 수술하라고 할 것 같더니.”
“난 그런 적 없어! 수술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을 가진적이 없었다.”
“치~ ”
은진이가 웃는다.
“은진아 니 내 잘 모르잖아. 나도 니 잘 모르고, 나는 그게 제일 걸리고, 사실 무섭다. 실망하는 부모님 모습과 나도 아직 어리고 내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니깐 무섭다. 니는 안 무섭나?”
“나는 괜찮다. 뭐 어때? 우리 성인인데 부모님 허락 없으면 우리끼리 살면 되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괜찮다. 내한테 크게 관심이 없다. 너무 신경 쓰지마.”
“그래도 어떻게 신경 안 쓰나? 모르겠다.”
우리는 밥을 먹고 근처 모텔로 향했다.
술기운인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나는 내 이야기를 한다.
은진이는 조용히 듣는다. 그러다 운다.
나도 운다.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니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도 어떻게 잘 버텼다.
잘했어.”
“니 이야기도 해봐?”
“난 그냥 평범하게 자랐어. 좀 다른 거는 지금 엄마가 내 친엄마가 아닌 거? 아빠가 내 중 3학년 때 엄마랑 이혼하고, 바로 재혼했어. 그리고 내 동생이라고 이제 4살 된 애가 있어. 아빠는 내 기억으로는 중 1학년 때부터 엄마를 때렸어. 그래도 엄마는 내 때문에 버텄는데, 더 이상은 힘들었다고 하더라.그래서 이혼을 했는데, 이혼 하자마자 재혼을 했어.
알고 보니 이혼 할라고 엄마를 때린 거야. 나쁜 놈이지?”
“에이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지.”
“내가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아빠랑 살고 있는데, 졸업하고 사회 나가면 안 볼까도 생각 중이야. 지금도 엄마랑 있는게 편한데 엄마 보다는 아빠가 더 부자고, 나는 돈이 필요하니깐, 왔다 갔다 해. 이해하지?”
“응. 그럼 방학 동안은 엄마랑 있을 거야?”
“그렇게 해야 되지않을까? 아마 엄마는 우리 사이 허락 해줄 거야.”
“우리 부모님도 허락은 해줄 거야. 뭐 어떻게 하겠어.”
“아버지,엄마 절 받으세요.”
“그래. 잘 갔다 온나. 몸 조심하고, 아무 생각말고, 가거라.”
“네. 걱정마세요. 아들이 체력은 좋잖아. 엄마는 울긴 왜 우노?남자들 다 가는데, 그라고 요즘 군대 옛날처럼 안길다. 2년 2개월 금방 간다. 휴가도 많고,”
“알았다. 가라. 애들 기다린다.”
나는 꼭 엄마를 안고 대문을 나간다.
대문 앞에는 은진이가 말자랑 같이 기다리고 있다.
“말자야. 니 시험 꼭 잘 쳐서 좋은 대학 가야 한다. 알았나?”
“니나 신경 써라. 사고 치지 말고, 군대에 가도 제일 더울 때 가노?”
“그게 나도 이렇게 빨리 나올지 몰랐다.”
“빵~~ 빨리 타라. 전주까지 가려면 바쁘다.”
나는 은진이를 한번 안고 차에 탄다.
동우가 아버지 차를 몰고 나온 거다.
나를 훈련소까지 태워 준다고 한다.
재수 학원 다니면서 면허증은 언제 땄는지 모르지만 운전은 잘한다고 한다.
뒷좌석에는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나는 차에 올라탄다.
이렇게 빨리 입대할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어쩌면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제일 빨리 입대할 수 있는 군대를 찾아보고 지원했다.
그중에 의경이 가장 빠르고 잘 풀리면 꿀 빤다고 해서 지원을 했다.
7월에 지원을 하고 신체검사를 하고 8월에 입대하게 된거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지. 내가 갔다오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니 다시 학교 보내줄게. 그때까지만 애기 낳고 잘 키우고 있어줘.”
나는 은진이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두렵고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군대를 택한 거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인지 이렇게 될 줄 알았는지
“니 인생 니가 사는 거지” 이러면서 은진이를 받아줬다.
누나들도 다 객지 생활하며 바쁘게 사는지라 내게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인지 써도 어쩔 수 없다는 건지 알아서 살라고 했다.
알고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를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누나들에게도 더 미안하다.
집에는 이제 부모님과 말자만 있다.
은진이는 은진이 엄마랑 지내기로 하고 학교를 휴학했다.
1주일에 한 번 우리 집 와서 밥 먹겠다고 한다.
뒤에 앉은 철수가 비아냥거리면서 이야기한다.
“야~이새끼 이거 진짜 나쁜 놈이네?”
“내가 왜?”
“우리가 모를 것 같나? 감당이 안 되니 일단 도망치는 거?”
“아니다. 빨리 군대 갔다 와야 아기 키우지.”
“됐다 캐라.”
“철수야 행님이 군대 빨리 갔다 와서 니 군대 갈 때 모시다 줄게.”
“됐다. 탈영이나 하지마라.”
“시끄럽고 애들아~ 말자 좀 잘 챙겨 주라.”
운전하던 동우가 내를 힐끔 쳐다본다.
“니가 왜 말자 신경쓰노? 은진이 잘 챙겨 주라 해야 하는 거 아니가?”
“그래 은진이 잘 챙겨 주라. 동우 니가 말자 챙겨라.”
“근데 친구야~ 은진이도 성격이 만만치 않겠던데, 억수로 화끈하던디.”
“아니다. 보이기는 그렇게 보여도 억수로 여리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니 훈련소에 도착했다.
이제 실감이 난다.
‘괜히 지원했나?’ 갑자기 무섭다.
“내 간다.”
“그래. 화이팅. 퇴소식때 올게! 편지해라.”
나는 그렇게 훈련소 문을 들어간다.
“안 일어나나. 일어나서 연병장까지 5분”
조교는 매일을 이렇게 악을 쓴다.
‘씨발~ 누가 요즘 군대 편하다고 했는지. 잡아서 패고 싶다.’ 나는 매일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4주라는 시간이 흐르니 훈련소 훈련도 할 만하다.
자연스럽게 집 생각 앞으로 살아갈 생각을 한다.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훈련소 퇴소를 한다.
의경은 훈련소를 퇴소하고는 경찰 학교에 가서 2주를 더 교육을 더 받아야 자대배치 받기 전에 가족들과 면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경찰 학교 2주를 교육받고 드디어 수료식 하는 날이다.
부모님이 보인다. 뒤를 은진이가 조심스럽게 걸어온다.
나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운다.
“그래 훈련은 할만했나?”
아버지는 내 등을 쓰다듬는다.
“네 할만했어요. 아버지는 아프신 데 없죠?”
“그래.”
아버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는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신다.
“묵으라. 니 김밥 좋아해서, 은진이하고 새벽부터 말았다.”
“오~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은진아 잘 먹을게.”
“많이 묵어라. 이제 자대가면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있나?”
“신병이 그래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나? 내가 몰래몰래 전화할게. 근데 몸은 어떻노? 애는 잘 있다나?”
“안 그래도 어머니가 걱정이 많아서 매주 병원간다. 건강하게 잘 있다 카더라.”
“그래. 힘들어도 좀만 참아라.”
“아이다. 니도 군대에서 고생할 거 생각하니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말자는 학교 때문에 못 왔다. 그리고 수능도 이제 한 달 밖에 안남아서 어머니가 동우도 못 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