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밭에 살다 보니,
나는 꽤 자주 복숭아나무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나무들, 자연들은 또 신기하게도 매일이 다르다. 매일을 멈춘 적 없다는 이야기다.
봄이면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아침과 저녁이 다를 만큼 잎이 피어나고, 가지 끝이 물들고, 어느 날 문득 꽃이 활짝 핀다.
사람들은 그때를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찬란함은 생각보다 짧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꽃은 지고,
복숭아나무는 본격적으로 열매를 키우기 시작한다.
열매가 맺히는 것도 참 신기하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자라다가,
어느 날 보면 손에 쥐어질 만한 크기가 되어있다.
여름이면 분홍빛으로 물든 그 복숭아를 수확한다.
그 시간 또한 얼마나 수고로운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가을이 오면 복숭아나무는
제 할 일을 다한 잎들을 떨군다.
텅 빈 가지로 남은 채, 겨울을 맞는다.
얼어붙은 땅 위에서,
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나무의 겨울은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며
큰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진짜 시작은 언제일까.
꽃이 필 때일까?
열매를 맺을 때?
잎을 떨굴 때?
혹은 숨 고르는 겨울?
자연과 가까이 있다 보면,
그걸 단정 지을 수 없다.
우리는 봄을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은 그런 경계를 두지 않는다.
모든 순간이 이어져 있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그 일조차
긴 흐름 속 작은 조각일 뿐이다.
어쩌면 그 전부가 시작이고,
그 전부가 과정이었다.
우리가 잘 살아가려면
그 긴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을 발견해야 한다는 걸
복숭아나무는 매일 나에게 알려준다.
크게 무언가 이루지 않아도,
오늘 하루, 이 시간을 잘 보내는 것.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걸.
꽃이 피는 날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잎이 돋고, 떨어지고,
숨 고르는 그 모든 날들이
다 소중했다는 걸.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크게 특별한 일이 없어도,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언젠가 찬란한 순간이 찾아온다 해도,
그게 전부가 아니고,
그걸 기다리는 시간 속에도 이미 행복은 있었다는 걸
내 마음에 남겨두고 싶다.
복숭아나무처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면서, 계절을 따라 흐르면서.
그래, 자주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