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언덕을 비비다
아침 산책은 태양이 덕이다. 꿈틀꿈틀 일어나서 태양이 줄만 붙들고 나가면 단골 골목들이 그곳에서 일어났던 것을 잠재우고 잠시 새 아침을 빌려준다.
아파트단지보다 부러 일반주택 쪽으로 몸을 트는 건 각자 집마다 다른 분위기가 대문 형태와 화분에 심긴 화초로 눈길을 끌게 하기 때문이다.
어제 분명히 이 집 대문 안에 둥근 호박이 등처럼 큰 것이 똑바로 매달려 있었는데 오늘 아침엔 대문 안이 썰렁했다. 주인아저씨가 때마침 문을 여시길래 호박이 안 보인다고 했더니 엊저녁에 따먹었다며 너무 이쁘면 꽁다리 달린 호박을 사다가 줄에 매달아 주겠다고 하신다. 생것 날것이 좋은 나는 이 집 검은색 대문에 그림으로 호박을 그렸다.
참 예뻤었는데 산책길에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좋은 장면을 놓칠 때가 많다. 집 방향으로 옮기는데 빌라 담으로 박이 열렸다. 왜 이렇게 예쁜 거야. 저번에 한참을 흰 꽃만 피우더니.
이른 아침에 좋은 것을 보면 명쾌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오게 된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어제 못 들러본 글벗지기 방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작가가 있었다. 나는 하나씩 읽고서 댓글을 단다. 네 개 글에 댓글을 달려고 보니 여태껏 쭉 발행해 온 글이 온통 삭제됐다. 너무 놀라서 얼른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똑똑하고 기특한 아이 이야기까지 싹 다 지우고 탈퇴를 한 이유가 댓글에서 상처를 크게 받았는데 이젠 라이킷으로 눈여겨본다고 했다. 더 큰 것을 요구한 사례도 나는 직접 댓글로 나누었었다. 나도 그런 예가 다분히 있었으며 주위의 다른 작가도 공격성을 받았다고 실토해서 공감했었다. 주위의 무례함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이 동질감을 느꼈으며 의지도 되고 그랬는데 그동안 고마웠다며 브런치를 떠났다. 이 작가 곁엔 내 책이 남아 있긴 하다. 눈이 붉어졌다.
나도 그랬는데...
https://brunch.co.kr/@newlife135678/263
이 글을 발행 후 미야작가가 글빵연구소에 내 글을 실었다.
나는 글빵 연구소의 수강생이 되어 강의를 청자 하며 숙제 참여를 하고 있다. 미야작가는 2강에서 나를 반장으로 지목해 주셨다. 별다른 의미는 없지 않겠는가, 웃으면서 현재 64명의 톡방에도 인사차 가끔 들른다.
모임 톡방을 개설하자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서로 인사를 시작으로 밤 11시 동굴 할 때까지 카톡방이 뜨겁다. 대구에서 부반장직으로 활동하는 오즈의 마법사 작가는 적극적으로 작가들을 입담으로 모으고 호주 골드코스트 수석 셰프로 유명한 호주아재 작가는 기상 7시부터 ‘아무도 없나요?’ 등 여러 이모티콘으로 종일 배꼽 웃음을 준다. 때로는 브런치 화면에 등수가 매겨진 글을 서로 응원해 주고 독려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뜨거운 방에 계신 분들이 다음날 글 사랑으로 발행되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열정이 있음을 느낀다.
5월 초에 글쓰기 뒷받침을 시작으로 이번에 16강은 글의 구조를 세우는 법, 상징을 활용하는 법, 도입부를 낯설게 쓰는 법, 비문 고치기, 문장의 복문구조와 병렬구조의 오류 검토, 생경한 글쓰기, 징검다리 문장 놓기, 글맥 잇기, 퇴고의 기술, 문법적 포인트를 해설해 주셨다.
그리고서 우리 1기는 강연 수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야 작가가 졸업에 대한 글을 써보라는 숙제를 제시했다.
이 숙제가 있기 전 호주에서 활동하는 몇몇의 작가, 제주, 대구, 부산 등에서 모임에 동반된 작가들 만남을 추진 중이며 다는 모이기 어렵고 나는 서울·경기·인천 거주 모임에 나갔다.
“누가 반장이세요. 블라썸도윤 작가님이 누구세요.” 카페 문손잡이를 놓기 바쁘게 묻는데 반장직을 당장 내려놓고 싶었다. 방장이 소개를 어련히 알아서 인사 말씀 중 하실 텐데 난 달갑지 않았다. 작가의 모임엔 직업과 학력 나이가 모두 불문이다. 브런치 안에서 두 개의 모임을 가진 작가도 있으며 다만 우린 브런치스토리에서 선정한 작가들이다.
개중에는 지식이 직업과 연관된 작품을 쓰시는 작가도 있고 일상에 유머러스하신 분도 있고 내가 못 알아듣는 언어를 가지고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다양한 장르로 글을 집필하는 가운데 대부분은 솔직하고 직설적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글 쓰는 작가로서 마음들은 엷고 곱게 연연하기 쉽다.
시에 매료되어 바람 타듯 쓰고 있는데 미야 작가가 이번 브런치 프로젝트에 나가보라고 하셨다. 나갈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가 강의에 포함된 숙제도 될 것 같기에 30화를 마음의 곳간으로 정했다. 한여름을 매일 궁둥이 붙이고서 발행을 해나갔다. 저장 글이 하나도 없는 데다 주제가 맞아야 해서 앞에 썼다가 뒤로 갔다가 중간에 끼워넣기도 했다. 결국 프로젝트에 출전했다. 27화쯤엔 같이 응원 주던 2인이 나를 외면했다.
진이 빠지고 건강검진까지 겹친 데다 마른 체질인 내가 2kg 감량이 됐다. 어젠 결코 영양제를 다 맞았다. 미야 작가는 브런치 팝업 전시 이벤트도 나가야 한다고 글을 쓰라며 또 떠밀었다. 얼떨결에 이 글도 쓰긴 했는데 관심은 없다. 젊은 작가들한테 용기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나는 천천히 익어가고 싶은 사람이다. 50대 참 빨리 간다고 생각했는데 60되니 더 급히 세월이 지난다 말이지. 그래서 느긋하게 본래부터 쓰고자 했던 시를 창작하는 중이다.
글은 선한 영향을 주고 상념이라는 흙에 생각의 씨앗을 심어준다. 나는 소소한 일상으로 어렵지 않은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편하게 쓰고 싶은 사람이다. 어려운 말은 인터넷 검색해야 하는데 뒤돌아서면 금세 잊게 된다. 그런 글은 댓글이 종일 걸린다. 나대로의 방식으로 편하게 쓰는 것이 부담이 없다. 진솔하다 보니 가식도 없어서 뚝딱 읽게 된다. 지나간 내 글을 돌아보면 어! 내가 이런 표현도 써봤네. 움찔할 때도 있으니 내게 글이란 필이 꽂힐 때 손끝을 놀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지 않는가’ 명언처럼 미야작가의 제안으로 마음의 곳간 북이 완성되기 전 이글과 맞물리는 시로 인천 지하철 시 공모전에 당선됐으니 올여름 나는 땀 흘려 농사를 잘 지은 셈이다. 수업에 있는 윤문과 복문, 주어, 동사를 잘 구분 짓냐고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하며 징검다리 놓기를 두드려 봤다.
좀 모자라면 어때, 좀 부족하면 어때, 모두 등에 지고 손아귀에 움켜쥐고 가져가지도 못하면서 퇴고 전 수정을 거듭할 수밖에 없더라.
인문을 배웠고 내 가슴에서 뛰는 글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글을 쓰는데, 문법과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지도를 받을 수 있어서, 나는 선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내 글이 나아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 작가한테 진심으로 고마운 선물을 받은 그날을 즐겼다. 계속 써댔다. 써가는 과정에 글의 방향을 잘 잡으려 여러번 읽어보며 글이 퇴고 될 때의 행복을 갖는 사람이 임자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