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언덕을 비비다
고기 없이 풀만 먹어줘서
미식거리는 걸까
되새김질한 소화액은
울퉁불퉁 길 앞서간 누렁이 소의 변
뒤를 이은 재촉 걸음 큰 등짝 하나
질펀하게 다리 놓아
남기게 된 변 무덤
밟히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고무신발 피해 가는데
콧등 앞에 선 까만 벌레
보쌈하려는 의지 하나
밥벌이 제대로 나선
땀난 쇠똥구리 물구나무로
황소 똥을 얻어가며 애쓴다
무얼 먹을까 생각 없이
남산만 한 무더기 변에
갈퀴 달린 다리로 사심 버린 채
밥 한 덩이 몸체만 해지도록
동그랗게 경단을 빚어
가족 찾아가기 바쁜데
어느 세월에 제집 찾아가려나
일한 소는 변마저 내어주고
짊어졌던 버거운 짐 벗어나서
나무 그늘 없이 왕방울 눈 감기면
덩치랑 걸맞지 않은
짧은 삶을 내려놓게 되어
코뚜레마저 선사하고
세상 멀리 달아난다
나도 가을을 타고 달아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