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언덕을 비비다
하늘 구름한테
바람이 전해주는 말
씨앗이 되어 포자가 번지니
데미안과 싱클레어도
뭉게뭉게 피어났다
잎사귀에 오색이 물들어
소풍 길 나서자 쌩쌩 바람은
든든한 버팀목의 머리를 풀어서
옷을 벗어 던지게 하고
사람은 주섬주섬
옷을 껴입게 했다
바람이 만들어낸 작품은 하늘 아랫사람들의 머리 위에 생성된 구름이다. 구름은 꽃과 동물 및 사물을 그려낸다. 그렇지만 그곳엔 헤르만 헤세의 등장인물 중 싱클레어의 불완전한 흔들림이 있고 데미안의 완벽함이 이를 덮어주려는 의도의 생활과 관련된 철학적인 구름도 피어난다. 그래서 하늘의 얼룩이 구름일지 모르겠다.
나무는 추워지면 온도를 밀어내고 옷을 벗어 던진다. 반면에 사람은 온도를 높이기 위해 옷을 껴입고 목도리에 모자까지 추위에 견디는 무장을 하게 된다.
더운 땡볕엔 그늘 쫓아 나무 밑을 찾고 차가운 냉기로 옷이 없는 나무한테 겨울엔 곁을 주지 않게 된다.
이것이 삶이지 싶다.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나면 예쁜 것만 보이는 게 아니고 각자의 삶에 대한 영향도 느껴지게 된다.
구름에게가 아니고 구름한테, 나무에게가 아닌 나무한테라고 도입을 해준 것은 그들의 존재에 대한 존엄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