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언덕을 비비다
여름이 곤히 잠들자 가을은 재빠르게 손 시림을 달고 바람을 데리고 왔다. 마지막 단추까지 다 끼워야 차가움을 이길 수 있다는 자부심이고 빨라진 걸음은 냉기를 차내는 것이라. 이때쯤부터는 공모전도 같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명랑처자 작가 연락을 받고 같이 43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급히 나가게 됐다. 재작년은 연극에 빠져 대학로를 동네처럼 드나들었는데 오늘은 글 쓴다고 여행보다 더한 설렘을 갖고 시간 제대로 맞춰 왔다.
삐에로 / 쓰레기 / 달콤 / 안경 4개의 주제가 뜨자 나는 매가리가 풀렸다. 명랑처자는 10분 내로 후딱 피에로를 원고에 옮겼고 내 옆의 70대 중반 아주머니는 시인 등단 하신 분이라며 안경에 대해 반을 습작하셨다. 그래도 뽑히려는 갈망을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갖았다. 혹시나 했는데 일련번호가 백번 대였던 우리와 이천번 대까지는 장르마다 시상에 불려지지 않았다. 3천번 대랑 5천번 대 그리고 8천번 대에서 상금을 거머쥔 수상을 하게 됐다. 경품추첨도 그랬는데 원고를 세 시간 동안 다 추려낼 수 있을지 의아 하긴 했다.
참가한데 의미를 두자. 바람 쐬러 나왔으며 다른 시인의 글도 만날 수 있지 않았는가. ᆢ
삐에로
노랑 눈물 한 방울
하늘이 내려준 구름 엉덩이에 문지르니
홍시 빛 머플러에 익은 석류 속 붉음이
낯 간지럽게 머리끝을 뽀글뽀글 태웠길래
벙벙해진 코주부는
뭇사람들한테 햇살 품은 미소를
넘겨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허풍을 뒤집어쓴 커다란 신발 속에선
오색 빛 웃음을 안다미로 내어주고 있다
* 박카스를 제조하는 동아제약에서 시행한 43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참가하다. 서비스받은 물품. 인천 새얼 백일장에선 인파가 많아서인지 음료조차 제공받지 못했었다.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나도 30분 내로 이렇게 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