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언덕을 비비다
한 장 바짝 달라붙은 달력에
시끄러운 고독이 걸렸다
이런저런 상념은 지루한 공기가 되고
검은 펜으로 희끄리한 세상을
걸개 하지만
매번 만나지는 하루 같아도
어제는 버석거리며 누렇게 떴고
오늘을 만져볼 수 있는 것은
탐색일까
모순을 잡아 올리고 싶지 않다
*걸개 - 물건을 걸어둘 수 있도록 만든 도구
아버지를 천상에 보내 드리고 참 허탈함을 느꼈다. 삼대째 맞는 애경사는 점점 하객이 줄어드는 것이 맞고 협조 준 민주단체는 겉은 번지르르 엉큼한 구석이 있어서 여동생은 이른 아침부터 성가신 전화를 끊어야 했다. 친절 앞에 검은손이 도사리다.
나의 마지막 안식처로 잡아놓은 잔디장에 아버지가 먼저 모셔졌는데 비문을 ‘따습게 누워 사랑으로 잠들다’로 새겨드렸다. 아버지의 무겁던 가죽 지갑에서 나온 오려진 신문 쪼가리와 손글씨는 ‘107세 노인이 아기를 낳다.’ 문구가 세 장이나 나왔다.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으셨는가 놀라웠다. 민주주의가 내부에선 허락지 않는 간판만 민주사회 단체는 직원들을 약 올렸으며, 과잉 친절이다 싶었는데 나보다 연장자들이 추저분했다. 아버지도 그러셨는데 그들 남자의 명분을 걸었던 것이겠지.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그리고 한 해의 남은 며칠 앞에 지인들은 썩는 모과처럼 불협화음에 생각을 궁리하고 있다. 희끄리한 오늘 나도 칙칙함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답답함을 이렇게 쏟아내고 있다. 며칠 내로 마음의 공사가 마무리돼야지 싶다.
* 일주일 전 아버지 찬을 갖다드리고 중앙공원 지나치는데 갑자기 이만한 모과가 발 앞으로 떨어졌다. 하나 남았던 큰 놈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알맹이들만 가지에 매달렸더라고. 미끌미끌하지만 향이 아주 좋다.
* 떼는 봄에 입혀질 것이고 징검다리 같은 돌멩이를 밟아야 한다. 다음 세대한테 부담이 없고 묘소랑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