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언덕을 비비다
서현 씨가 한 달 만에 전화를 주었다. 강남구청 소속으로 환경미화원 일을 한다면서 새벽 세 시에 인천 미추홀구 출발 강남구청 도착 배당된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기본 이동 수단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는 거라고 했다. 면접시험 치르는데도 자전거를 타보게 하고 결정짓는 것이라 하루 미리 자전거를 타보고 간 곳.
취업이 됐다고 다가 아니다. 동료와 화합하고 잘 어울리기 위해 반찬거리나 먹거리를 늘 주머니처럼 달고 다닌다고 했다. 텃세에 눌려 그만두지 않으려고 아직도 신경을 쓰며 이제 숨 좀 돌리기는 하나 눈치는 봐야 한다고 했다. 하루는 청소 후 젖은 밍크 목도리를 말리려고 옷걸이에 걸어 놨는데 집 올 때쯤 없어졌다고 했다. 손을 탄 것에 대략 짐작은 가지만 말을 못 붙여봤다고 했다.
순간 나도 밍크 옷에 대한 기억이 있다. 서른 중반인 아이들이 대학입시 때 학부모 모임이 있었는데 거의가 수준을 표시하려 했는지 삐잉 둘러서 밍크코트를 걸치고 왔다. 그때쯤 임플란트 관계로 신경 치료를 대학병원에서 받는데 담당과장이 비싼 옷이니 잘 보관하라고 간호사한테 지시를 내렸다. 이날 뜨끔한 이후로 그 옷을 입지 않았다. 물론 드라이 값도 무시 못 했지만 사람 차별을 겨울철엔 밍크로 하는가 해서 찝찝한 기분은 오래갔다.
서현 씨는 50대 중반의 최근 손녀를 본 젊은 할머니이다. 요양보호사 일을 내 가족처럼 돌보다 힘에 부쳐서 언니 소개로 직업을 바꾸게 됐다. 그러면서 짬 내어 성악을 배우러 다닌다. 움직이던 사람은 놀 수가 없어서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는 나이대가 됐다고 했다.
주위에는 정년퇴직하신 선생님들도 2차 직업으로 미리 자격증이나 수료증을 발급받은 후 푼푼히 용돈이라도 버시겠다며 장애인 도우미라도 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평소에 기본 지출비가 있으니 마냥 쉴 수가 없으며 집에 있으면 갑갑해서 활동하는 이가 의외로 많은 거다.
어제는 김장해서 나눠 먹기도 하고 시골 농작물도 나눔 주시는 작은아이와 아이 대학 동창인 서윤이, 이 아이 엄마, 나 이렇게 넷이서 서대문 쪽 봉원사 근처의 찜질방에 가서 종일을 찜질하고 왔다. 나와 내 작은아이만 운전을 못 해서 그 친구 엄마가 운전해 주는 바람에 서대문까지 갈 수 있었다. 오래된 느낌의 불가마 사우나였으나 동네 근방을 떠나 여행 온 기분으로 나섰다.
땀을 빼며 식혜랑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수런수런 말을 붙여갔다. 딸아이 친구인 서윤이는 영양사 직업을 갖고 있는데 주방일을 하러 오는 이들의 면접을 볼 때마다 이해를 다 할 순 없지만 딱하다며 혀를 찼다.
“아줌마 우리 쪽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사오십 대인데 그분들의 남편들이 못 됐더라고요. 여자를 일터에 강제로 보내는 가스라이팅이 다 있어요. 본인은 농땡이 부리며 놀면서 부인을 이곳저곳에 취직하라고 들여보내요. 또 남편들은 거의 백수이면서 돈을 갖다주지 않아 식당 일을 꼭 해야 한다며 얼굴색이 안 좋은 이도 있어요.”
“겁나서 결혼하겠냐? 이거.” 서른이 넘은 딸아이가 맞장구쳤다.
간호사를 한 서윤이 엄마는 남매더러 독립해서 나가 살라면서도 혼전순결을 꼭 지키라며 집 오는 시간을 반드시 체크하고 중간중간 자녀와 연락해야 맘이 놓인다고 했다.
서윤이 말을 듣고 요즘도 배우자를 학대하고 돈 벌어오라며 아내를 일터로 내모는 남편들이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 갖게 했다. 좋은 것만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현실 앞에 내 아이의 결혼관이 좁아지고 불안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찜질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나는 호강하는 것인가 사뭇 생각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