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콩깍지 팥깍지
일하던 사람은 일을 해야지. 갑갑해서 집 콕하며 마냥 쉬지 못한다.
전단알바 끝머리에 유기농 판매업소인 ‘초록마을’에서 한 달가량 알바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남동생 회사에 가서 같이 일을 하라고 몇 번이나 권유하셨다. 늦게 출근하고 자기 멋대로 결근을 하는 직원 대신 경리업무에 일가견이 있는 내게 재촉을 하셨다. 그래도 가족끼리 한데 어울려서 협조하라고 말이지.
내 작은아이가 방학 때 먼저 가서 인천공항 물류 회사의 돌아가는 시스템을 경험으로 훑어봤다. 남직원은 툭하면 콘서트 간다하고 빠지고 여행 간다며 며칠씩 자리를 비우고 딸 아인 자정을 넘어서 왔다. 그리 바쁘냐고 했더니 처음 거래한 곳의 일지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해 정산을 못 받아서 서류 점검하러 간 건데, 불려간 의지 없이 시간이 지체됐고 너무 많은 물량이며 파일 저장이 안되어 있어서 서류란 건 아예 손을 못 됐단다. 그런데도 삼촌은 전철 막시간에 역 앞에 태워다 주더란다.
잠만 잔거 같아 삼촌은; 아, 예상은 했다! 23시 15분행을 타고 온 딸내미는 저녁을 거르고 잤다. 이 딸내미가 개학 후 총각 직원은 그만뒀으며 내가 들어섰다. 애저녁에 내가 있더라면 서류가 밀리지 않았다.
남동생과 부딪히지 않아야 하는데... 조심성을 갖고서 출근도장을 찍었다.
동생 따라 업체에 인사 다니고 창고 출고부터 업무가 개시됐다. 동생은 대표이기 전에 형제 관계인 내게 쓸다리 없는 인상을 잔뜩 쓰고 온갖 스트레스 짜증을 부렸다. 가족이 들어서는 바람에 아까운 직원이 나갔다며...
내가 운전 배울 기회를 여러 번 놓친 게 다행이다. 하마터면 아마도 창고 업무까지 내가 볼 뻔했잖은가.
새벽 샛별을 보며 출퇴근했는데 제 정거장을 이미 지나치거나 두 번씩 겹치게 이런일이 번잡하게 일어났지만 잠 앞에 속수무책이 된다. 꼭 두 정거장 정도 남았을 때 잠이 들어버리는 습관.
업무 폰은 정신없이 나대고 나는 “정거장을 지나쳐 갔어요. 얼른 할게요.” 이제 출근하냐는 업체 직원 말의 대꾸 후 다시 하루 일이 시작됐다.
하루는 면세점 담배 납품하는 기사님이 옷장을 실어 왔다. 동생이랑 낑낑대고 올라와서일까?담배를 입에 문 동생이 “뭐해, 사장이 닦아야 해?” 깜짝 놀랐다. 내려 논 농을 조금만 더 있다가 닦아야겠다고 대비하고 있었는데 역정을 냈다. 내가 가져다 놓은 행주용 물휴지로 닦아냈다.
내 옷장이란다. 촴 촴 촴 화 좀 내지 마라!
혹시 모를 대비로 5만 원권 4매씩 지갑에 여유로 갖고 다녔으나 창고비로 그날 그날 다 나갔다. 동생이 정산을 안 해준다. 급료에 포함된 거라며 초짜 월급을 누가 많이 주냐는 등 되려 핀잔만 줬다.
이를 악 물었다. 나는 업무에 완전 터득이 돼서 빠꿈이가 될 때까지는 모든 처음과 동생 너의 비위 상한 말을 다 이겨 내리라. 이기자!
인천대교 길은 바닷길이라 낭만적인 멋이 있고 논에는 서성이는 두루미를 한 폭의 그림으로 새기고 한 겨울엔 차창 밖 나무마다 백설기떡 흰 가루를 얹힌 모습을 보았다.
예전의 연하장 느낌을 받아 시를 많이 업무 폰에 올리기도 했는데 이런 감동도 얼마 못 가서 하루잠이 부족한 나는 아예 저절로 눈을 감고 다녔다. 잠이 부족한 것을 나는 생체실험처럼 겪어야 했다.
그래도 동생은 내게 꼬박이 퇴근을 23시 15분 전철을 타게 했다. 막차는 이제 두 대 남기고서.
돈을 버는 것은 버겁고 냉철하다. 특히 누나의 입장에서 동생 회사의 업무를 나서서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무지 고되다. 인내의 한계다. 농작물 짓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극한 직업이지만...
계양역에서 공항 쪽으로 환승하는 입구는 죄다 아는 얼굴들이 꾸역꾸역 탄다. 인사도 하고 목례도 하면서 3방향의 무료 셔틀버스를 줄 서기로 기다린다.
내가 출근 때마다 응시하는 오동나무 앞 셔틀이 서는 곳. 껍데기가 벗겨져 나가며 노랑 민들레가 살랑살랑 피었고 너나 나나 이 앞에서 무수한 이들이 이직에 대해 고민해 봤을 자리.
둘째 시숙은 자주 트로트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힘내라고 덜 힘들라고 잘 참아내라는 노래를 서글픈 것만 쓰리게 보내주시네..
공항으로 오가는 인바운드 아웃바운드 차량들
https://youtu.be/Y9IL0J1SOio?si=m1vvujng40S94FHD
구름같은 인생 (김준규&이순길)
출근길 눈을 지그시 감고서 큰 숨 뱉으며 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