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Jun 11. 2024

11. 이 순간을 살아라.

힘든 과거가 너를 괴롭히지 않게 꿈꾸는 미래가 너를 이끌어가게

브런치를 시작한 지 벌써 거진 세 달이 다 되어간다. 나의 첫 글이 3월 29일에 올라와있다.

나이는 인생의 속도와 정비례한다고 하던데 정말 시속 30km에서 10km 더 빨라진 것뿐인데도 초과속으로 느껴진다.


15년 전에 신나게 활동하다 찰지게 버려져 거미줄 쳐진 내 블로그가 생각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간 내 블로그에는 20대 어린 시절에 썼던 손발 오그라드는 싸이월드 감성 글들이 난무했고 비싸지 않은 프랜차이즈 커피 하나 마시면서 그럴싸한 리뷰를 썼더랬다. 내 거 내가 보는데 너무 부끄러워지는... 그 시절 나의 블로그 활동을 보고 재밌어 보인다며 같이 시작했던 동생은 파워블로거 이제는 인플루언서로 꽤 영향력이 큰 블로거가 되어 있었고 동생의 블로그는 여느 잡지 못지않게 다양한 콘텐츠와 정보가 가득했다. 퀄리티도 정말 뛰어났다. 분명 초반에는 내 블로그가 훨씬 더 이웃도 많고 내용도 가득했는데... 역시 성실한 노력은 위대한 결실을 맺는다는 걸 동생의 블로그를 보며 새삼 느꼈다. 나의 남부끄러운 글들을 삭제하려다가 그것도 추억이니까 그냥 두기로 하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한층 성숙해진(?) 나의 새로운 글로 재시작을 알려보려 했다. 나도 다시 해보자!


그런데 막상 블로그에 쓰려니, 나의 '이웃'들의 목록에 지인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렇다면 좀, 내 이야기에 필터가 많이 생기겠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음. 그럼 나도 브런치?

그리하여 그렇게 이렇게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거 쉽지 않구나. 난 사실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고 한번 '불합격'받았다. 너무 만만하게 봤나... 자기소개를 너무 간략하게 썼나... 다른 사람들의 불합격 후기를 읽고 다시 지원서를 자세하게 정성 들여 써서 냈고 합격했다. 불합격받고 합격하니 뭔가 기쁨이 배가 되며 각오가 더 남달라 졌다. 그렇게 처음 쓴 글이 '파혼'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보니 그것이 내 이야기의 출발선을 끊었고 그 후로 이어진 지난 1년 10개월 동안의 내 눈물의 기록이 이어지게 되었다. 골 때리는 국제 썸남과의 이야기도 써보고 이런저런 즐거운 추억들도 쓰려고 했던 건데 의도치 않게 브런치 글을 쓰는 날이면 처음과는 다르게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자꾸 떠오르고 무기력해지며 글이 쓰기 싫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브런치북의 제목이 문젠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래서 브런치를 그만두려고 했다.


나는 수영을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수영을 안 하고 있다. 수영장은 일반 헬스장과는 달리 장소가 제한적이고 수도 적다 보니 어느 수영장이든 수강등록이 치열하다. 특히 나 같은 애매한 중급반은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늘 접영을 배우는 단계에서 그만두다 보니 수영을 어릴 때부터 해왔는데도 여전히 접영을 못하고 있고, 접영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개인레슨까지도 알아보았으나 수영장이 너무 멀고 시간 맞추기도 힘들며 무엇보다 수강료가 장난 아니다. 이래저래 수영을 안 할 수 있는 좋은 핑계들이 많다. 핑계는 핑계일 뿐, 내가 수영을 안 하고 있는 건,

'의지의 문제'이다.


기초반 사람들은 자주 바뀌고 심지어 일주일만 본 사람도 있었다. 모든 걸 마스터 한 연수반 사람들은 부동이고 결석도 잘 안 한다. 강사가 있으나 가이드만 해줄 뿐 그들은 거의 쉬지 않고 시간 꽉 채워 신나게 하다 나간다. 다이빙도 하고 턴도 하고 정말 멋있기 그지없다. 바로 옆에서 비슷한 또래인 그들을 보며 동기부여를 한껏 받은 기초반은 연수반까지 가기 위해 불굴의 노력과 변치 않는 성실을 다짐한다. 그러나 나 같은 중도 이탈자가 부지기수로 생겨나고 절제력과 강한 의지를 가진 소수만이 연수반을 장악한 후 인어처럼 해녀처럼 물을 휘어잡는다. 


( 개인적으로 )

수영은 자유형이 제법 잘 될 때부터 꽤 재미있어진다. 물 안에서 내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자신감과 재미를 동시에 준다. 그러면서 속도내기가 어려운 평영으로 맞은편 끝까지 쉬지 않고 가게 되면 수영선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기까지다. 늘 여기에서 그만두게 된다. 재미있어질 때 어려운 접영에 들어간다. 내가 잘하는 자유형은 웜업으로 끝낸다. 그러니 슬슬 힘들어지고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내년에 다시 시작하자며 따듯한 방구석으로 들어간다. 이 패턴으로 지금까지도 접영을 못한다.


요즘 내가 브런치에서 딱 그 모습인 것 같다.

처음에는 매주 글을 쓰며 내 인생에서 이런 기록을 남겨둔다는 것이 정말 의미가 컸고 내 마음치료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브런치 속의 좋은 글들을 읽으면 동기부여도 되었다. 그런데 두세 달이 지난 지금은, 글 쓰는 게 어려워지고 힘들어진다. 자꾸 마음이 어두워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무기력증으로 지난주 처음으로 발행을 미루었다. 글쓰기의 묘미를 느끼기도 전에 감정에 휩싸여 그만두려는 내 모습이, 나비처럼 훨훨 날 수 있는 양팔 접영을 코앞에 두고 감정에 휩싸여 그만뒀던 내 모습과 겹쳐 보인다.


브런치를 다시 열었다. 7일 만에 노트북을 켰다.

이건… 그렇게 그만두지 말자. 내 블로그처럼. 내 수영처럼.

파워블로거 동생과 연수반 사람들의 성실과 노력을 잊지 말자.

어려웠고, 힘들었고,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으나 감정을 절제해 가며 글을 써 온 나 자신을 칭찬한다.

'너, 그래도 오늘 해냈어.'라는 내적 동기가 앞으로 내 삶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이제

인생, 너 참 어렵다를 마치려고 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나를 소모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일상에서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나를 쓰기 위해.

더 이상 슬프고 고되었던 과거가 아닌 행복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기대하며

이 순간을 살기 위해.


빵~끗!


이전 10화 10. 저도 잘해보려고 그런 거예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