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상실이 준 절망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와 이메일 서명

by 드림맥스


조직 개편을 통보받고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도무지 출근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아무 일이 없는 평소 아침이길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악몽을 꾼 듯했지만, 내 앞에 벌어진 것은 실제 현실이었다. 평소처럼 출근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여느 때 같았으면 씻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매일 출근하던 회사에 갑자기 나가지 않으려니 적막감이 찾아왔다. 나는 어쩌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갑자기 맞이한 일주일의 휴가가 시작되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회의실에서 구성원들과 개선 점검 회의를 하고 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어색했다. 아침에 눈을 뜬 채로 누워 그저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적막감이 흘렀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눈앞에 마주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자리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실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최선을 다해 직장에서 성과 향상을 위해 몰입했건만, 그런 노력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디서부터 꼬여 버린 것인지 되뇌어 보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휴가 기간 할 일은 역설적이지만 나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집무실을 비워야 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집무실 공간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듯했다. 이틀 뒤 일요일, 정신을 차리고 회사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주말의 회사는 고요했다. 어색한 발걸음으로 텅 빈 사무 공간을 지나, 명패가 사라져 버린 집무실에 들어섰다. 매일 출근해 소리 내어 읽으며 다짐하던 벽에 붙은 조직 비전 체계도가 눈에 들어왔다. 구성원들과 함께하던 회의 탁자, 그리고 함께 지내던 화분들이 조용히 나를 반겼다.


집무실에는 담당 직책으로 승진하기 약 4년 전부터 키우던 소중한 친구가 있다. 팀장 시절, 새롭게 변경된 사무실 자리로 이동했을 때, 누군가가 버린 작은 화분이었다. 콩나물처럼 가녀린 이름 모를 식물이 일곱 가닥 심겨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가장 먼저 쳐다보며 인사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 버려진 식물에 대한 연민의 정이었을까. 그렇게 나의 비밀스러운 친구가 되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식물 친구에게 얘기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자, 마치 나를 보호해 주는 수호신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식물 친구가 자라난 만큼 나의 시간도 흘렀고, 어느덧 팀장에서 담당으로 승진했다. 팀장으로는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진급은 거의 힘들다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신설 조직의 담당 리더로 선임되었다. 주변의 축하와 함께 집무실과 개인용 법인 차량을 받았다. 마치 하늘의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그동안 묵묵히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 온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누구나 쉽게 가보지 못한 직책까지 올랐으니, 그런 생각이 들만했다. 자만심은 아니지만, 열심히 일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진급 과정에서 내 곁을 지켜준 식물 친구에게 ‘드림이’란 이름을 지었다. 나의 꿈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행운이었다. 2년 동안 집무실에서 드림이는 쑥쑥 자라났다. 이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드림이도 더는 집무실에 머무를 수 없었다. 워낙 길게 자라 버렸기에 11가닥의 줄기 끝만 잘라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이제 집으로 자리를 옮겨 드림이를 다시 키워야만 했다.


개인 물품과 드림이 줄기를 챙겨 집무실을 나왔다. 이젠 이 공간도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웃고 긴장하며 후배들과 함께하던 시간 기억으로만 남겨야 했다.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집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일요일의 사무 공간 복도를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리고 얼마 뒤, 법인 차량을 반납하라는 한 통의 문자가 왔다. 그동안 함께한 차량과도 작별해야 할 시기가 왔다. 회사 차고지에 법인 차량을 반납했다. 또다시 묘한 허탈감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직책과 함께 신기루처럼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일주일 휴가도 끝이 났다. 이제 다시 출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출근 전날 밤에는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마치 시험 전날 학교 가기 싫었던 옛 기억이 뒤엉킨 듯했다. 사람들 앞에 다시 설 자신감이 없었다. 남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다시 조직 개편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출근날의 아침은 어김없이 밝았다. 내 주변은 지난주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집 안의 풍경도, 거리의 모습도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법인 차량 출근이 아닌, 출근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야 했다. 내 몸은 이미 변화를 알고 있었다. 발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길게 늘어선 버스 대기 줄에 섰다. 다시 2년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한때 여기서 출근 버스를 탔었지. 다시 돌아왔구나. 그런데 이젠 회사 가면 뭘 하지?’


불과 얼마 전의 나였다면 떠올릴 수조차 없던 생각이었다. 책임과 역할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던 지난주에는 출근의 이유를 고민할 틈조차 없었다. 출근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였고, 하루의 시작은 늘 자동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직책이 사라진 이후, 출근은 의무가 아니라 질문이 되었다. 나는 왜 이곳으로 가고 있는지, 오늘 하루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나에게 묻게 되었다.


회사에 도착해 변경된 자리에 앉자, 마치 이름 모를 외딴섬에 홀로 있는 것만 같았다. 변해 버린 조직 상황의 현실을 온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임원을 꿈꾸던 집무실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어색해진 후배들과의 인사, 새롭게 마련된 책상 하나.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다들 나를 걱정하는 듯한 눈치였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시선 하나하나가 나를 향해 머무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그 시선들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메일함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이메일 이름 뒤의 직책이 사라졌다. 모니터를 바라보다가도 시선은 자꾸 허공으로 흩어졌다. 손은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말을 걸면 대답은 했지만, 그 말들은 내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는 분명 그 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몇 발짝 떨어져 있었다.


회사에 출근해도 명확히 할 일이 없었다.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야 했다. 앞으로의 방향도 목적지도 없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방랑자가 된 듯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때부터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밤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고, 잠이 들어도 자주 깼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개운하지 않았고,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셔도 머리는 맑아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커피 한 잔이면 정리되던 생각들이, 이제는 아무리 마셔도 흩어지기만 했다. 입맛도 사라졌다. 식사하면서도 맛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에 맞춰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상실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날의 통보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이후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조금씩 사람을 잠식했다. 특별히 슬픈 일이 없어도 마음은 가라앉았고, 특별히 화가 날 일도 없는데 온몸이 무기력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


화장실의 거울 속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표정이 거의 사라진 얼굴, 힘이 빠진 눈빛. ‘이 사람이 정말 나인가.’ 거울 속의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나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그동안 나는 늘 바쁘게 움직이며 나를 유지해 왔지만, 이렇게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본 적은 거의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휴대폰으로 업무 메일을 확인하거나 다음 날 일정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 일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었지만, 어떤 프로그램이 나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은 분명히 흘렀지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했고, 별일 아니라는 듯 웃기도 했다. 누군가 걱정 섞인 질문을 던지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혼자가 되면 설명할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지쳐 있었고, 휴식을 취했지만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상실 앞에서,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미리 대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올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았다는 것과 실제 맞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그 차이를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겪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방향도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지금의 나는 바닥에 와 있다는 분명한 자각이 왔다. 더 내려갈 곳이 없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멈추게 했다. 계속 외면하던 감정과 상황을, 그제야 처음으로 정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삶의 바닥은 끝이 아니라, 무언가를 돌아보기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깨달음이 곧바로 희망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여전히 막막했고, 여전히 두려웠다. 다만 이 상태를 그냥 견디며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나는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이끌던 조직폐지 이후 구성원들과 마지막 회식이 있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시간의 추억이 깃든 조직이 해체되고, 사람들과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던 그날이었다. 왁자지껄한 술자리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까지 리더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의연한 척 구성원들을 격려하고 응원했지만, 내 마음속 공허함은 달랠 길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술자리는 마무리되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술집 앞 길거리에 모여들었다. 12월의 밤거리는 차가웠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고 하던 그 순간, 사람들이 나를 에워쌌다. 한 무리의 사람들 가운데 서게 된 상황이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내게 한마디 하라고 외쳤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긴 세월 동안 사람들 앞에서 한마디 하던 내 모습이 필름처럼 돌아갔다. 하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은 척 사람들에게 멋진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순간, 폐지된 조직의 비전 체계도에 적었던 문구를 조용히 말했다.


“구성원들이 마음껏 몰입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일순간 장난기 어린 야유가 쏟아졌다.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나는 인디언 밥이 되었다. 두 번의 줄다리기 끝에 나는 큰 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그제야 구성원들은 정답이라며 박수하며 환호했다. 백의종군하는 전임 리더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를 들어 올렸다. 나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몇 번의 헹가래 동안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마치 슬로모션처럼 구름 위를 나는 듯했다. 나를 들어 올린 사람들의 손길이 생생히 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지고 있었다.




우승한 스포츠팀의 감독도 아닌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 주었다. 그들은 암울했던 내게 힘내라는 무언의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슬픈 이별의 자리였지만, 인생 최고의 행복한 순간으로 뒤바뀌었다. 그날 나는 조직을 잃고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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