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정리되지 않은 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자주 휴대폰 검색창을 열었다. 뚜렷한 목적은 없었지만, 분명한 불안 속에서였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 다음 질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50대 중반, 나는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실은 쉽사리 해답을 주지 않았다. 조직 개편 이후 나는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안에서는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생활의 활력이 빠지고 절망이 나를 짓눌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무언가가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절망과 혼란 속에서도, 회사에서 데려와 물컵에 꽂아둔 드림이 작은 줄기 끝에서는 투명하고 단단한 작은 뿌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드림이의 뿌리가 자라나는 동안, 나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가장 먼저 내 공간을 정비했다. 회사에서 사라진 내 집무실을 집 안에서 다시 만들어 보려는 시도였다. 회사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집 안의 내 방은 책상 하나 없이 각종 물품을 쌓아두는 창고 같은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방 정리에 들어갔다. 불필요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치웠다. 평소 쓰지 않는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고 공간을 확보했다. 무엇보다 책상이 필요했다. 가족들 동의를 얻은 뒤, 거실에 있던 넓은 탁자를 내 방으로 옮겼다. 깨끗하게 비운 탁자 위에 노트북을 세팅했다. 이제 이곳이 나의 집무실이라고 상상했다. 변화된 공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의 사고를 자극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퇴근하고 밤이 되면 나의 공간에서 습관처럼 노트북을 켰다. 특별한 목적도, 분명한 답도 없었다. 메모장을 열고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일기인지 그냥 기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튀어나오는 생각을 손끝에서 자판 위로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왜 하필 그 시점에 글쓰기를 시작했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회사에서 수없이 작성해 오던 보고 자료와는 전혀 달랐다. 현상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점검하던 글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글이었다. 내용의 완성도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무심코 옮겼다. 그 시간 동안은 신기하게도 잡념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글쓰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비어 있던 시간 대부분을 글쓰기에 쏟게 되었다. 혼란했던 내적 불안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차분해진 마음은 어느새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고 있었다.
회사는 매년 사업계획을 세운다. 한 해 동안 조직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한 세부 실행 계획을 수립한다. 그런데 문득 돌이켜 보니, 나는 내 삶의 사업계획을 한 번도 세워본 적이 없었다. 그저 조직 안에서 주어진 역할 수행에만 급급했다.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또렷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회사 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버틸 수 없었다.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엑셀을 열었다. 나와 가족들의 나이를 현재부터 80세까지 나열하고, 그 아래에 현재 자산과 예상 수입, 지출을 하나씩 입력했다. 정확한 예측은 할 수 없었다. 남은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었다. 미지의 시간은 두려움을 불러왔다. 숫자는 정리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 속에 있을 때보다 수치로 정리된 자료를 마주하니 나의 대략적인 현재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엇이 문제이고, 아직 가능한지 구분하며 마치 사업계획을 세우듯 며칠에 걸쳐 작업했다. 그렇게 나의 현실을 정리하고 나니, 막연했던 불안은 다소 누그러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분리되었던 나를 현실로 데려올 수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2의 인생’, ‘50대 자격증’, ‘중장년 재취업’
비슷한 단어들이 화면 위에 줄지어 나타났다. 하나를 클릭하면 또 다른 목록이 열렸고, 그 안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선택지는 많은데, 길은 보이지 않았다. 자격증 목록을 한참 훑다가도 어느 순간 창을 닫았고, 채용 공고를 읽다가도 끝까지 내려가지 못했다.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일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고르는 기분이었다.
현재 직장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환경으로 나를 옮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 막막함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선택지가 없어서 막막한 걸까. 아니면 내가 나를 설명할 말을 잃어서 그런 걸까.
28년 동안 나는 조직 안에서 비교적 명확한 언어로 살아왔다. 직책과 책임이 있었으며, 나를 부르는 호칭이 주는 권한이 늘 따라다녔다. 그 언어는 나를 설명해 주었고, 동시에 나를 보호해 주었다. 나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직책 하나면 충분했다. 그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직책이 사라지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원치 않는 부서에 배치되었다. 다행히 조직 리더와 친분이 있던 터라 감사하게도 한동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무작정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잠시 쉬어 가는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조직은 사람을 오래 비워 두지 않는다. 나의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야만 했다.
야속한 시간은 흘러갔지만,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나침반처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처음으로 나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막상 말을 꺼내려 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직책 없이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가볍게 던져진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말을 고르게 되었다. 대답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멈추고, 다시 고쳐 말하곤 했다. 짧은 침묵이 생겼고, 그 침묵을 넘기기 위해 애써 웃었다. 그 짧은 망설임 속에는, 내가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른다는 당혹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었다. 그제야 분명해졌다. 지금 내가 두려운 것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생각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찾았다면, 이제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돈, 안정, 명예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어느 것도 결정적인 답이 되지는 못했다. 그것들은 조건일 수는 있었지만, 방향은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누군가를 위해 성과를 내야만 존재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구나.’
조직에서는 늘 결과가 중요했고, 효율이 기준이었다. 나 역시 그 규칙에 익숙해져 있었다. 목표를 정하고, 과정을 관리하고, 결과로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성과로 나를 증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공백이 나를 막막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이 막막함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오래된 삶의 방식이 이젠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나는 새로운 기술이나 자격을 찾기 전에, 나의 기준과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전의 방식으로는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날 밤, 검색창을 닫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화면은 꺼졌지만, 질문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직책이 없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 질문들은 여전히 막연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도망치고 싶은 질문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분명 나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답은 없었지만, 방향은 생기고 있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직업이나 일이 아니라, 나를 설명할 새로운 언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언어를 찾지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다시 흔들릴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아주 우연처럼 보이는 작은 계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넷 창 한 귀퉁이에서, 나를 잡아끄는 문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눈동자는 멈추었지만, 내 마음에서 작은 요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 문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