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건넨 초대장
그날도 별다른 기대 없이 인터넷을 켰다. 나는 요즘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소모당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찾고 있다기보다,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검색창에는 이미 수없이 썼다 지운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화면 아래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광고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엇을 검색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나는 목적 없이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MBA 신입생 모집.’
이 몇 단어는 생각보다 오래, 내 눈을 붙잡고 있었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았고, 과하게 눈길을 끄는 문구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갔을 광고였다. 실제로 마우스 커서를 옮겨 창을 지우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구는 나를 멈춰 세웠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다. 손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단어를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MBA’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단어였다. 이미 한참 전에 끝난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지금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50대 중반이 된 나이도, 상황도, 여유도 모두 애매한 시점이었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학생이 된다는 상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 와서 MBA를?’
의심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곧이어 현실적인 질문들이 따라붙었다. 조직을 잃은 내가 MBA라니, 기술과 효율을 논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경영 이론을 읊는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현실적인 고민이었던 비용과 체력. 무엇보다 나이였다.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사회에서 충분히 오래 일했고, 이제는 내려놓을 나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끝나가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다시 시작이라니. 새로운 시작보다는 정리가 더 어울리는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짓누르는 장면을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도전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마지막 확인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화면을 닫지 못했다. 광고를 바로 클릭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 단어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건 진로 제안이 아니라, 질문일지도 모른다.’
MBA라는 단어가 내게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직 배우고 싶은가.’
‘다시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가.’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쉽게 고개를 젓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이제는 늦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해 왔다. 직책이 사라진 뒤, 투명 인간 같은 미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 이상 새로 시작할 수 없다는 전제를 먼저 깔고, 그 위에서 모든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왔다. 그것이 현실적이라고 믿었고, 어쩌면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와의 비교를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또다시 나를 둘러쌌다.
하지만 광고를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이미 작은 파동이 일고 있었다. MBA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보다, ‘배움의 자리’라는 개념 자체가 나를 흔들었다. 지금의 나는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나를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결과로 나를 증명해 왔지만, 이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하는 시점에 서 있었다. 이걸 놓치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검색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서를 올려둔 채 몇 초를 망설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링크를 눌렀다. 클릭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분명히 움직였다. 모집 요강이 화면에 펼쳐졌다. 일정, 커리큘럼, 지원 자격.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것이 정답일 리는 없다는 생각과 이마저 외면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대와 두려움이 분명히 뒤섞여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노트북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고, 화면을 내려보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었다. 이 광고를 본 순간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막막함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작은 클릭은 나를 조금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고, 앞으로의 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질문을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태도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그날의 나는 이전과 달랐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단, 알아보자. 판단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 말은 겸손한 핑계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나에게 허락한 첫 번째 움직임이었다. 멈춰 있던 상태에서 아주 미세하게나마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우연처럼 보이는 그 광고는, 그렇게 내 안의 필연을 조용히 건드렸다. 2024년 1월, 대부분의 MBA 정규 모집은 이미 마무리된 시점이었고, 내가 보았던 것은 수시 추가 모집 공고였다. 마치 조금 늦게 도착한 사람에게 남겨진, 마지막 문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 마음 둘 곳을 빼앗겨 버린 나에게 MBA는 마음의 도피처로 다가왔다. 그때의 나는 변화를 원했다기보다는, 숨을 고를 자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도전이라는 거창한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면, 그곳엔 그저 숨 쉴 구멍을 찾던 한 사람이 서 있었다.